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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탄생

대한민국의 최전선에서 거센 물살을 마중한 도시 유승훈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부산의 탄생

■ 책 소개역경의 파도를 넘어, 웅숭깊은 역사를 품은 도시 ‘부산’의 탄생 한반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부산은 어떻게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무역항이 되었을까? 부산의 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운 좋게, 어쩌다 보니 높아진 것이 아니다. 부산의 지리적 특성과 퇴적된 시간,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지금의 부산이 만들어졌다.부산(釜山)은 안으로는 누룽지를 끓이고 밖으로는 방을 덥힌 가마솥처럼 역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외부의 뜨거운 변화와 아픔을 끌어안고 더운 숨을 뱉었던 것이다.부산을 현대, 근대, 조선의 세 시기로 나누어 그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이 책에는 부산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부산에 대한 애틋하고 짠하면서도 사무치는 감정들을 소환할 뿐만 아니라, 부산의 정치, 경제, 문화를 종횡무진하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실감나는 사진들이 더해져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진짜’ 부산을 만날 수 있다.■ 저자 유승훈향토문화연구가이자 문화재연구가이다. ‘옛 우물에서 맑고 새로운 물을 긷는다(舊井新水)’라는 신념으로 우리 문화와 부산 역사를 알리는 글을 쓰고 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후 민속학을 전공하여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6년 전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박물관에서 낡은 유물을 살피거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2012년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을 펴내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부산 문화에 대하여 쓴 『부산은 넓다』는 부산의 10대 히트상품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부산』, 『조선 궁궐 저주 사건』, 『문화유산 일번지』, 『부산은 넓다』,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 『우리나라 제염업과 소금민속』,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우리 놀이의 문화사』,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 『현장속의 문화재 정책』 등 다수가 있다.■ 차례서문1부 현대의 부산: 뜨거운 용광로의 탄생1장 대한민국의 막다른 최전선, 피란수도 부산1 「굳세어라 금순아」와 「경상도 아가씨」2 대한민국의 심장부가 된 부산3 아, 힘들고 거친 피란살이 3년이여4 그래도, 피란지에서 희망을 찾다5 이승만 반공정권의 탄생6 「이별의 부산정거장」, 피란수도 부산은 무엇을 남겼나2장 뜨겁게 달궈진 ‘수출과 정치 용광로’의 탄생1 수출산업의 최전선, 부산2 민주주의 최전선과 대통령의 잉태2부 근대의 부산: 회색빛 관문도시의 탄생3장 외세 열기로 가득한 개항의 도가니1 근대 관문도시 부산2 조선을 삼킨 근대3 ‘부산항 그림지도’의 거류지4 ‘포산항견취도’에 나타난 변화상5 해관과 감리서6 푸른 눈의 이방인이 본 ‘Fusan’4장 근대 조선을 축소한 도시, 부산1 부산에 열린 근대의 관문2 달라진 부산, 근대의 시공간3 관광지로 전락한 동래4 일제에 맞서는 부산 사람3부 조선의 부산: 들끓는 가마솥의 탄생5장 조선의 가마솥이 된 부산1 조선시대 가마솥의 탄생2 『해동제국기』의 富山3 해두보海頭堡로 전락하다4 관방關防과 충렬의 최전선6장 가마솥 문화의 탄생1 흰 모래밭에서 탄생한 수영 문화2 춤추고 술 익는 고장, 동래3 조일 문화의 접경지대, 초량왜관주석 유승훈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부산의 탄생 가마솥부터 용광로까지 대한민국 최전선 ‘부산’의 탄생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도시, 부산에는 항상 활기가 넘친다. 인구 약 340만의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은 그 탄생부터 현재까지 잠시도 쉰 적이 없다. 작은 한반도 끝에 자리한 항구도시 부산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자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개항기의 부산은 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여 근대 문물의 거센 파도를 맞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과 가까운 위치 탓에 부산에 터를 내린 일본인들 틈에서 설움을 견뎌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톱질하듯 밀고 당기는 전쟁통에 밥그릇만 겨우 챙겨 떠밀려 내려온 피란민들을 받아들이고 피란수도로 기능한 장소도 부산이었다. 부산(釜山)은 그 이름처럼 우리 대한민국의 가마솥이 되어 주었다. 가마솥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아주 특별한 도구였다. 뜨거운 장작불에 달궈진 가마솥은 그 안으로는 누룽지를 끓이고 밖으로는 방을 덥혔듯이, 부산 또한 역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외부의 뜨거운 변화와 아픔을 끌어안고 더운 숨을 뱉었다. “굳세어라 부산아”, 부산은 대한민국을 비추는 거울 한반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부산은 어떻게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무역항이 되었을까? 부산의 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운 좋게, 어쩌다 보니 높아진 것이 아니다. 부산의 지리적 특성과 퇴적된 시간,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지금의 부산이 만들어졌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6·25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는 빗속을 뚫고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을 임시수도로 공포했다. 부산이 도합 3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는데도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연구자들은 ‘임시수도’ 대신 ‘피란수도’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했는데, ‘임시’라는 말에는 수도는 당연히 서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부산은 대한민국이 절벽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막다른 최전선’이었다. 비록 군사적 전선은 아니었지만 정치, 행정, 문화, 교육의 최전선이 부산에서 형성되었다. 부산에서 땀과 피를 흘린 결과로 전쟁은 종결되고, 서울로 환도할 수 있었다. 피란수도가 부산에 남기고 간 숙제는 너무 많았다. 작은 체구로 힘겹게 수십만의 피란민을 업은 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산의 심정은 여러모로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부처 일부를 세종시로 분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분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서울 공화국이다. 웅숭깊고 무구한 역사를 듬뿍 품은 부산을 비롯한 지방의 역사를 단지 ‘일부의 역사’로 치부하며 뒷방 신세로 미뤄둬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서울뿐 아니라 치열했던 지방사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세상으로 난 문을 활짝 열었던 부산! 이곳에 가 보면 지금도 구석구석에서 그때 그 시절의 상처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산은 매 순간 기죽지 않고 다시 우뚝 일어섰기에, 깊이 패인 옛 상흔을 어루만지면서 미소를 머금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마! 부산 아이가!” “복병산 기슭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피란민들은 사십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려야 했다. 일제가 산을 절개하는 토목공사를 벌인 탓에 급경사가 생겨났고, 이리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위해서 사십계단이 조성되었다. 아, 피란민의 삶도 이 가파른 사십계단과 같았다. 어깨에 짐을 진 채로 아슬아슬하게 사십계단을 오르다 보면 저 멀리 부산항 바다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층에 도착할 즈음에는 아무리 삼수갑산을 넘나들던 무쇠다리 함경도 사나이라 한들, 오금이 저리고 맥이 풀리기 일쑤였다. 층층계단에 앉아 먼바다를 보자니 이북 고향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때 어디선가 이웃에 사는 경상도 아가씨가 다가와 애처로이 묻는다. ‘보이소, 와 그라요, 고향 생각나서 그런가 본데 힘을 내이소'”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시작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서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에 이르는 고속도로다. 1968년 2월 1일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 전 구간이 왕복 4차선 도로로 준공되었다.115 서울의 수도권과 부산의 영남권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물류와 교통의 혁신을 가져왔다. 경부고속도로는 국가 경제의 대동맥이자 일일생활권을 상징하는 교통로가 되었다. ‘마이카 시대’, 즉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부른 것도 경부고속도로였다. 이후 정부의 도로 정책은 대동맥과 혈관들이 이어지듯이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에 두고 이뤄졌다. 경부고속도로를 통해서도 부산은 서울을 잇는 제2도시로서 전국적인 위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했다. 이미 경부선이 깔려 있었고 국도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물류 산업의 대동맥이 되어 주었다. 경부 성장축을 통해 바다와 맞닿은 부산은 ‘수출과 무역의 최전선’으로 입지를 다졌다. 부산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었고, 신발과 섬유산업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앞장섰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얘기다. 하지만 그 뒤안길에는 치열하고 숨 가빴던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는 빼곡하게 들어앉은 신발공장 안 여성 노동자들의 사진을 통해 24시간 쉴새없이 가동되던 공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2교대로 근무했던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가파른 성장과 화려한 영광 이면에는 고된 노동과 이름 모를 희생이 있었다. “1978년 컨테이너 수출입항으로 본격적 채비를 갖춘 부산항은 우리나라 수출입의 최전선에서 싸웠다. 1979년 전국적으로 컨테이너 수출물량 비중이 34.6퍼센트까지 올라갔다. 부산항이 컨테이너 수출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6퍼센트였다. 컨테이너 수입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3.8퍼센트였다.131 컨테이너를 이용한 수출입은 거의 부산항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는 수치다. 경부고속도로와 부산항을 잇는 부산 도시고속도로는 컨테이너를 전국에서 부산으로, 다시 부산에서 전국으로 원활하게 이동시키는 물류체계로 작동하였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깝고 미국과의 교역도 매우 유리한 위치였다. 당시 미국과 일본에 편중되었던 무역구조는 부산항의 지위를 ‘굴지의 무역항’으로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1960년대 수영강 하구에 고려제강과 태창목재 등 공장이 입주했지만 1970년대까지는 한적한 어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골산을 허물어 삼익비치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1980년대 민락 공원 일대를 메우면서, 관광과 상업의 중심지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수영이 인기 높은 주거 단지로 탈바꿈했다. 이제 수영강 하구의 전통 마을이었던 보리전과 널구지 자리에는 회색 아파트 단지만 무성할 뿐이다. 찰스 버스턴의 사진을 보거나 광안리 모래밭에서 과거의 수영 문화를 어슴푸레 회상해야 한다. 넓은 모래톱이 조성되었던 수영강 하구, 수심이 얕아서 무릎까지 바지를 걷은 채로 조개를 잡던 그 시절을.” 부산의 바다에서, 나를 건져올린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부산은 가마솥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역사의 최전선에 선 부산이 뜨거운 열을 은근한 온기로 전도시키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쏟아지는 외적들의 총탄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부산이 가마솥이 된 이유는 우리나라 해안가를 괴롭히는 왜구들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골칫거리인 왜구들은 역사의 ‘뜨거운 불’이었다. 이 뜨거운 불을 견뎌야 할 공간으로 낙점된 곳이 삼포(현재의 창원, 부산, 울산)였다. 조선 정부는 날뛰는 왜구들을 안정시키고자 삼포를 열어줬다.” “부관연락선의 등장으로 조선은 본격적인 근대를 맞이하였다. 부산이 근대 조선의 관문이 된 것도 부관연락선 때문이었다. 부관연락선은 근대의 문화를 싣고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건너왔다. 부관연락선에서 내려 첫발을 딛는 곳이 부산항이었으므로 일본인은 물론이요, 서양인들도 부산을 통해 조선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부관연락선이 취항함으로써 부산은 식민지화의 아픈 길을 걷게 된 동시에 국제적인 관문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이렇게 근대는 제국과 식민의 등에 업혀 조선으로 왔으니 참으로 역설적이다.” 오늘날 부산을 떠올리면 여름 피서객으로 가득한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 시끌벅적하고 분주한 국제시장, 그리고 종일 큰 선박이 바쁘게 오가는 부산항의 이미지가 늘 함께 한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곳엔 예외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힘 있고 거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뒤로는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가 보이는 듯하다. 삶은 늘 복잡다단하며 하나로 정의되기 어렵다. 세기를 거슬러 조선시대에도 삼포개항 이후 물밀 듯 들어온 왜인과 조선인 간에 이 평화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긴장도 있었지만, 형제, 이웃처럼 지냈던 모습이 공존하였고, 근대로 무장한 일본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던 전근대의 조선 한켠에는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고자 했던 의지가 드러나는 ‘초량왜관’이 있었다. “근대의 교통수단은 시공간을 축소시켜 멀고도 먼 일본을 가깝게 만들었다. 조선에 오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부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항하고자 하는 조선인들도 크게 늘었다. 부관연락선은 염상섭이 쓴 근대소설 『만세전』에도 등장한다. 부관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주인공 이인화는 ‘부산을 조선의 축소판’이라 말하였다. 덧붙여, ‘부산의 팔자가 조선의 팔자요, 조선의 팔자가 곧 부산의 팔자’라고 하였다. 그렇다. ‘부산의 운명은 곧 조선의 운명’을 상징할 정도로 부산은 그야말로 조선을 집약시킨 축소판이었다.” “부산 거류지의 일본인은 마치 지배자처럼 행동하였다. 정작 주인이 되어야 할 조선인은 피지배자처럼 착취를 당하였다. 경제적 종속관계가 조선인을 노예와 같은 신분으로 추락시킨 것이다.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일본인은 거류지 외에 주변 토지를 마구 사들였다.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가옥과 토지를 저당잡힌 채 고리대금으로 돈을 빌렸다. 그러나 종국에는 비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여 집도 절도 없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큰 흐름의 역사는 물살 한 번에 작은 것들을 휩쓸고 지나가버리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는 건축물과 유물들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일제 치하에서 부산은 근대 도시로 거듭났지만 가난한 조선인들은 소외되고 쫓겨났다. 그러나 산비탈과 변방에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거대한 억압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들불처럼 번졌던 독립만세의 함성은 현대로 이어져 어둡고 암울했던 유신체제 아래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으로 메아리쳐 돌아왔다. “부산의 6월 항쟁은 일찍이 꾸려진 강고한 지도부를 기반으로 전국의 민주화운동을 모범적으로 선도했던 투쟁이었다. 그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약한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는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민주화 투쟁의 역량을 쌓았다. 그뿐만 아니라 인적·조직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투쟁의 최전선에서 기폭제가 되었던 부산의 6월 항쟁은 부산 시민의 민주주의 정신을 고양한 학교이자 우리나라 대통령까지 잉태한 역사의 자궁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난 역사에서 오늘의 아픔을 본다. 그리고 과거의 이들이 어떻게 역경의 파도를 넘어왔는지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를 마주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건져 올린다. “옛 우물에서 새로운 물을 긷는다(舊井新水)”는 말처럼, 단연코 부산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굳건한 힘을 선사해준다.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세상에 의문을 던지는 53가지 철학 이야기 이충녕 | 도마뱀출판사 | 2023년 06월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 책 소개 철학자들의 생각과 철학의 가치,우리의 삶을 지혜롭게 가꿔주는 철학이라는 언어!철학이라는 말, 참 어렵다. 우리는 흔히 철학을 골치 아프고, 현실과 동떨어지고, 알쏭달쏭해서 알아듣기 어려운 그 무엇으로 생각한다. 철학을 몰라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딱히 알고 싶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은 멀리 있지 않다.우리는 모두 철학자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게 모르게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가치와 기준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고민과 선택의 바탕에는 철학이 깔려 있다. 철학이 없이는 인간도 없고, 철학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도 없다.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철학은 계속 이어지며, 인간과 삶과 세계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해 왔다. 그것은 철학자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 삶의 의미, 행복, 인간관계, 성공, 사랑 등등을 고민할 때 우리는 철학을 하고 있다.■ 저자 이충녕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존재의 의미를 찾겠다는 포부로 철학과에 진학했으나, 의미는 정답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철학자의 이론은 어디까지나 재료일 뿐, 이를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개인의 역할을 중시한다. 주된 관심사는 실존주의, 심리철학, 인지과학 등이지만,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 분야를 두루 익히기를 추구하며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가 있으며, 유튜브 채널 〈충코의 철학〉을 운영 중이다. 다양한 글쓰기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차례들어가며물처럼 산다는 것 - 노자철학의 원리 1 : 절대주의를 의심하기 - 소크라테스철학의 원리 2: 상대주의를 경계하기 - 소크라테스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원리 - 데모크리토스예술을 국가로부터 추방하려 했던 철학자 - 플라톤행복은 절제에 달려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도덕의 근본은 이성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 맹자와 셸러고양이에게도 예술작품은 아름다울까 - 엠피리쿠스원효대사 해골물의 진짜 의미 - 원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카르트데카르트의 숨겨진 뒷이야기 - 데카르트가장 잘 당하는 사람이 가장 힘 있는 사람이다 - 스피노자원인이란 과연 무엇일까 - 흄칸트의 윤리학: 나비효과로 살인을 저질렀다면 - 칸트칸트의 미학: 예술은 놀이다 - 칸트정언명령 쉽게 이해하기 - 칸트공포가 선사하는 즐거움 - 버크예술을 배워야 하는 철학적 이유 - 실러3이라는 수를 사랑했던 철학자 - 헤겔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 - 밀신은 죽었다의 진짜 의미 - 니체규칙을 파괴하는 자, 초인 - 니체해리포터는 존재할까 - 마이농잠시 멈추고 태도를 바꾸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 - 후설철학의 천재가 뒤집은 존재에 대한 생각 - 하이데거엄마는 나의 존재를 이루고 있다 - 하이데거존재는 시간이다 - 하이데거악마에 대하여 - 힐데브란트똑똑함이 무서움으로 변할 때 - 호르크하이머코로나 위기로 또다시 떠오르는 전체주의 - 포퍼과학과 철학의 만남, 과학철학 - 헴펠감정의 마법적인 힘 - 사르트르배경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 - 메를로퐁티당신의 판단을 결정하는 배후의 이론들 - 콰인매체는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 맥루한자유로운 사형수 - 카뮈나라는 주체는 주변의 힘에 의해 구성된다 - 푸코중국어 방 논증, AI는 생각할 수 있을까 - 존 썰대학교 2학년 때 MIT 대학원에서 강의했던 천재 철학자 - 크립키알파고는 바둑에서 상대방을 이기고 싶어 할까 - 호글랜드나도 모르게 저지르는 도덕적 잘못 - 싱어인간 정신은 사물까지 연장되어 있다 - 클라크모든 나라가 서로를 돕는다면 어떻게 될까 - 자오팅양국가라는 틀을 뛰어넘어서 생각하기 - 세이거내로남불에 대한 철학자의 남다른 생각 - 도버환경보호 활동가가 매연을 배출하면 비난받아야 할까 - 벡충코의 철학적 단상 - 논리학이란 무엇인가충코의 철학적 단상 - 수학을 배우는 이유, 신의 언어 수학충코의 철학적 단상 - 확실한 지식은 존재하는가충코의 철학적 단상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우분투 철학충코의 철학적 단상 - 올림픽이 감추는 진실충코의 철학적 단상 - 죽음에 관한 인류의 생각충코의 철학적 단상 - 꼭 지켜야 할 삶의 원칙, 자비의 원리 이충녕 | 도마뱀출판사 | 2023년 06월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물처럼 산다는 것 - 노자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시작될 때, 양쪽에서 모두 물을 주목했다는 것은 완전한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서양에서는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전까지는 신화적인 믿음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일차적으로 설명되었다. 그런데 탈레스는 세상의 근본 원리를 물이라는 하나의 물질에서 찾았다. 이런 원리적 사고가 미세입자의 운동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과학적 사고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철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동아시아에서도 똑같이 물이라는 대상에 주목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노자이다. 탈레스가 세상 만물이 생성되고 운동하는 과학적인 원리를 물을 통해 설명하려 했다면, 노자는 물의 움직임 안에서 천하를 얻는 정치적인 원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노자는 그 생애가 직접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주나라의 도서관장을 지내다가 나라의 명이 다한 것을 알고 소 한 마리에 올라타 유유히 관문 밖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관문을 나서기 전, 그는 관문을 지키는 관리가 가르침을 달라고 요청하자 5천 자의 글을 써주었는데, 그것이 『도덕경』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신비로운 이미지 때문에 노자의 철학은 속세를 떠나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자연 친화적인 말, 또는 치열하고 답답한 경쟁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노자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최선의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학적 이론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노자의 철학은 현대의 게임이론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노자가 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물처럼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물에 관한 노자의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구절이다. 여기서 선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남을 위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은 사회 안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며 최고에 오르고, 그것을 필요한 만큼 오래 유지하며 사람들과 화합을 이루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노자는 이러한 어려운 일을 이루기 위한 전략으로서 물처럼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면 물은 어떤 특성을 가졌길래 물을 본받아 행동하면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일까? 먼저, 물은 다른 것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흘러간다. 보통 다른 사물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위로 뻗어나가려 한다. 나무는 햇볕이 있는 위로 자라나야 좋은 나무이며, 건물은 안전한 높이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 좋은 건물이다. 사람 역시 양지바르고 공기가 맑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반면, 물은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밑을 향해서 흐른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어두운 곳으로 흘러간다. 그곳은 어두침침하고 냄새가 나는 하수구일 수도 있으며, 깊숙한 진흙탕일 수도 있다. 물은 그런 곳을 피하지 않는다. 그저 길을 따라서, 깊이, 더 깊이 흘러간다. 이런 물의 특성을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곳에 가는 것을 서슴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일을 도맡아 할 것이다. 처음에 보기에 이런 사람은 눈에 띄지도 않고 하찮게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밑으로 어두운 곳으로 흘러 들어가 남들이 쳐다보지 않은 분야에서 자신의 입지를 가져온 사람이 나중에 가서는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가기를 스스로 자처함으로써 전체 시스템의 가장 밑을 떠받치는 곳에 숨어 들어가 그곳에 대한 장악력을 키운다. 그럼으로써 나중에는 시스템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양지바른 곳에서 잘 닦여진 길만을 걸어간 사람들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이 사회가 비교적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그들이 이 시스템 속에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에 큰 혼란이 생기고 시스템이 붕괴하여 지금 운 좋게 누리고 있던 안정적인 체계가 무너진다면, 물처럼 밑으로 흐르지 않고 나무처럼 햇빛을 쫓아 위쪽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 가장 낮은 곳에 가기를 스스로 자처할 수 있어야 위기와 혼란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도 가장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노자는 물에 관해 이야기하며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라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익숙하게 듣는 그 말을 남겼다. 물은 가장 약하고 가장 부드럽지만, 가장 강하고 굳센 것들을 압도하는 힘을 품고 있다. 이는 진부한 말이지만, 실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다. 잘하려다 보면 자꾸 힘이 들어가고 뻣뻣해진다. 그럴 때면 항상 물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철학의 원리 1 : 절대주의를 의심하기 - 소크라테스 나훈아의 테스형!이 큰 인기를 끌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인생의 의미를 질문하는 노래이다. 왜 나훈아는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던졌을까? 아마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은 대개 안다. 그렇다면 왜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은 그토록 독점적인 유명세를 차지할 만한 정당성을 갖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의미에서 철학을 시작한 사람이며, 그 뒤로 펼쳐진 모든 철학, 모든 학문, 나아가 인간의 모든 지식의 전개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사고방식의 시초가 된 사람이다. 나는 그 사고방식을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사이의 중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시각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상대주의자일 수도 있고 절대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는 기존에 확고한 지식이라고 받아들여지던 앎의 체계를 깨부수려고 했던 사람이며, 특정 지식의 절대화에 격렬히 저항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단지 사람에 따라,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두 가지 상반된 자세를 동시에 취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자기모순인 듯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철학의 조상으로 대우받는 것은 바로 이 상반된 견해를 매우 획기적으로 통합했으며, 그럼으로써 앎이라는 것 전반에 걸쳐 우리가 취해야 할 모범적인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안다. 내 생일이 언제인지, 친구 이름이 무엇인지,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앎은 굉장히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많은 경우 앎은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걸까? ‘붉은 노을’이라는 제목? 노래의 멜로디? 가사? 어렴풋한 느낌? 여기서 붉은 노을에 관한 앎이 과연 무엇인지 엄밀하게 설명하라고 해본다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사례로, 우리는 인천을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런데 인천은 무엇일까? 인천의 부지? 인천 시민들의 집합? 인천의 행정체제? 아마 우리가 인천을 안다고 말할 때는 보통 이 여러 가지 요소가 아주 불분명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냥 인천을 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는 데 별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인천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인천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할 수 없다면 과연 인천을 안다고 말하는 게 적절한 것일까? ‘앎’은 이토록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지만, 그 정체는 신비에 싸여 있다. 소크라테스는 앎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질문한 사람이다. 소크라테스 이전까지는 앎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인천을 안다고 말할 때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비로소 처음으로 “앎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가?” 하는 질문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전환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소크라테스는 말꼬리를 잡음으로써 많은 사람의 미움을 받았다. 그런데 그 말꼬리 잡기가 서구의 지식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진보의 시작이었다. 말꼬리를 잡지 않는다는 것은 주어진 지식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럴 때 그 지식은 고정된 지식, 절대화된 지식이 된다. 그렇게 되면 지식은 더 이상의 발전을 멈추고 정체된다. 계속해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야만, 끊임없이 비판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 노력해야만 지식은 더욱더 좋은 모습을 갖춰나간다. 칸트의 윤리학: 나비효과로 살인을 저질렀다면 - 칸트 선과 악은 자주 말해지는 주제이다. 영화에는 선한 주인공 무리가 있고, 악한 반동인물 무리가 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하고 충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악에 가득 차 나쁜 짓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선과 악이라는 현상과 관련해 우리가 가끔 묻곤 하지만, 결코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지나치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과연 무엇이 선한 걸까? 무엇이 선한 것인지에 대해 완벽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쯤 세상이 조금은 덜 복잡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엇이 선한지에 대해 철학자들은 나름의 좋은 설명을 내놓으려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조금 독특한 생각을 했던 철학자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칸트이다. 선에 대한 칸트의 생각은 정말 독특하지만 묘한 설득력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지지와 사랑을 받는다. 칸트의 생각이 독특한 점은 우연히 선한 것과 우연하지 않게 선한 것을 강하게 구별했다는 것이다. 자,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당연히 수많은 사람이 선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로 선한 일을 하지만, 누군가는 그저 우연히 선한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한 사업가가 그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풍력발전소 건설에 투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투자하여 건설한 풍력발전소 덕분에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가 크게 줄었다고 해보자. 이때 그 사업가는 분명히 선한 일을 한 것이지만, 그 선한 일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것이다. 그저 돈 때문에 투자했을 뿐인데 선한 결과가 뒤에 따라붙은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 청년이 강가를 지나가다가 강에 빠진 어린아이를 보고 마음속에 선한 의지가 끌어올라 얼른 물에 뛰어들어 아이의 목숨을 구했다고 해 보자. 이때 이 청년은 전혀 우연에 의존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관점에 따라서 선한 행동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선한 행동을 한 것이 중요하지, 그 과정은 어떠해도 상관없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실 행동의 결과만 놓고 보면 사업가의 선한 파급력이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그가 풍력발전소에 투자한 덕분에 공기의 질이 개선되면 미세먼지 관련 질환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수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청년은 그저 한 아이의 목숨을 구했을 뿐이다. 결과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면 청년보다 사업가가 더욱 선한 일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어쩐지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든다. 아무리 결과적으로 선한 행동을 했다고 해도 그 선한 결과가 그저 우연에 의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선한 의지로 한 행동에 비해 더 선하다고 볼 수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칸트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언제나 우연적 요소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의도한 대로 모든 게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에서의 행동은 많은 경우 의도한 그대로의 결과로 이어지 않으며, 때로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저 주차하려던 것뿐인데 옆 차를 긁기도 하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내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꽉 줬을 뿐인데 넘어지려는 옆 사람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행동의 결과를 바탕으로 선과 악을 따지는 것이 정당할까? 누구나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완전히 알 수 없다. 완전히 선한 의지로 행동했는데 세상에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고, 완전히 악한 의지로 행동했는데 세상에 구원을 가져올 수도 있다. 내가 오늘 버스터미널에서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를 부축해드려 고속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드렸는데 그 할머니가 고속버스 운행 중에 버스 기사와 말다툼하는 바람에 고속도로에 10중 추돌사고가 발생해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할머니를 도왔던 나의 선행은 순식간에 수십 명을 죽음으로 이끈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내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결코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 과장을 보태자면 결과는 무작위다. 그렇다면 결과가 아닌 다른 데서 선와 악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칸트는 오직 선의지만이 그 자체로 선하다고 말한다. 칸트의 주장은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선한 의지만큼은 그 자체로 선하다는 것이다. 만약 결과를 기준으로 선과 악을 따진다면, 선이 되는지 악이 되는지는 일종의 도박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내 행동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 기상천외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결과보다는 오히려 의지에서 선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로 이어지건, 애초에 선하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누구도 나무랄 수 없는 순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고 태도를 바꾸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 - 후설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크 후설은 지식과 태도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한 바 있다. 후설은 특정한 종류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태도를 바꾸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평소 우리는 별 의식 없이 특정한 태도를 취한다. 수학을 공부할 때 ‘나 이제부터 수학을 공부하기 위한 태도를 취해야지!’라고 수학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통은 수학을 공부하는 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수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동으로 태도가 바뀌지 않는 경우이다. 어떤 학생들은 수학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수학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런 학생들은 아무리 훌륭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간단한 함수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만다. 후설은 이런 일이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도 자주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속한 지식의 전통에 익숙한 사람은 이미 특정한 태도를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취해 온 상태이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태도를 바꿔서 다른 분야의 지식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설은 직접적이고 투박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판단중지’이다. 판단중지란 평소에 세사을 바라보던 판단의 방식을 잠시 멈추고 순수하게 그 순간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에 집중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평소에 자신이 회사원의 시각에서만 회사를 바라봤다면, 학생의 시각에서만 학교를 바라봤다면, 국민의 관점에서만 국가를 바라봤다면, 한번 지금까지 당연하게 내렸던 판단을 중지하고 순전히 그때 떠오르는 느낌대로 그 대상을 고찰해보자. 그러면 그간 자신의 유연하지 않은 태도 때문에 막혀 있었던 이해의 통로가 뚫릴 수도 있다. 이런 판단중지는 철학자나 여타 학자에게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지식을 얻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다. 존재는 시간이다 - 하이데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체험하는 시간보다는 추상적인 시간을 곧장 떠올린다는 것이다. “시간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듣고 ‘퇴근하고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지금까지 지나왔고, 앞으로 취직의 문이 기다리고 있는 길’처럼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시간을 떠올리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보다는 대개 ‘1초, 2초 흘러가는 것’이라는 양적이고 추상적인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하이데거는 바로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이해 방식이 진정한 시간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고 생가했다. 하이데거가 생각하기에 가장 근원적인 시간은 우리가 미래를 예감하고 과거를 떠올리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그런 시간이다. 여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 여름까지의 시간이 앞에 펼쳐진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여행을 추억하면 과거로 시간이 쭉 뻗어나간다. 만약 이렇게 우리가 그 안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과 사건이 없다면, 즉 우리가 기대하고, 두려워하고, 바라고, 후회하고, 추억하는 그런 고유의 의미들이 있는 지점이 없다면 시간은 그저 동일하게 쭉 펼쳐진 사막 혹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공간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이데거의 생각에 따르면 엄마가 오시길 기다리는 마음이나 어제의 즐거웠던 데이트처럼 의미가 있는 지점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시간을 ‘셀 수 있다.’ 엄마를 기다리면서 하나, 둘, 셋 하며 시간을 세어보는 경험이 있어야만 시간이 흘러간다는 게 뭔지, 시간을 더하면 더 긴 시간이 된다는 게 뭔지, 긴 시간과 짧은 시간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엄마가 빨리 오시면 그 시간은 ‘짧은’ 것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엄마가 늦게 오시면 그 시간은 ‘긴’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시간의 짧고 긺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가 없다면, 5분과 1시간 사이의 차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온통 하얀색뿐인 벌판 안에서는 한 걸을 가든 만 보를 가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듯이, 체험적인 의미가 있는 지점들이 없다면 5분이나 한 시간이나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다. 자유로운 사형수 - 카뮈 사형수는 모든 희망을 빼앗긴 사람이다. 그는 부자가 될 수도 없고, 가족을 이룰 수도 없고, 명예를 얻을 수도 없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모든 희망을 버림으로써 그는 오히려 가장 절대적인 자유를 얻게 된다.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으므로 아무런 불안도, 집착도 없다. 그는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현재의 순간을 살게 된다. 그렇게 그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감옥 안의 환경이 허락하는 한 그는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꼭 안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일지도 모른다. 카뮈의 사형수 이야기는 진짜 사형수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미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서 사형수다. 죽을 운명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에게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여러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사형수와 달리 우리에게는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많은 일을 이룰 가능성이 열려 있다. 아이를 갖는다든지, 아름다운 집이나 안정적인 노후를 보낸다든지 하는 일들은 상상만 해도 아주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희망이 때로 족쇄로 다가올 때 카뮈의 사형수를 생각해보는 것은 좋은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 우리도 결국 모두 사형수의 신세이므로, 본질적으로는 어떤 희망에도 집착해야 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희망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역설적으로, 그렇게 해서 희망이 없는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은 다시 희망을 품어도 상관없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패션, 색을 입다

10가지 색, 100가지 패션, 1000가지 세계사 캐롤라인 영 | 명선혜 번역 | 리드리드출판 | 2023년 05월

패션, 색을 입다

■ 책 소개 컬러, 패션, 인간을 파고드는 지적 여행!10가지 컬러와 패션이 들려주는 화려한 이야기의 향연우리는 다채로운 컬러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색채는 인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왔다. 문화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죽음을 맞이할 때도 정해진 색의 수의가 입혀진다. 이렇게 컬러는 국가별, 시대별로 다른 의미가 있다.빨간 드레스 효과를 아는가? 최신 연구에 따르면 빨간 옷은 특히 여성이 입었을 때 욕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다른 색상의 옷을 입었을 때보다 더 많은 남성의 관심을 끈다. 로체스터 대학교의 색상 심리 실험에 따르면 빨간색 옷을 입거나 붉은 색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여성은 남성들로부터 더 매력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저자는 칵테일 파티에서 녹색 드레스를 입으면 어떤 의미가 있고, 여성 정치인이 흰색 바지 수트를 입으면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등 10가지 컬러에 담긴 숨겨진 상징성과 컬러에 따른 패션의 역사를 치밀하게 탐구한다. 시대와 세계를 넘나들며 컬러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각 컬러가 가진 상징이 변화해 온 과정을 저자와 함께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과 장소, 상황에 어울리면서도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컬러를 찾게 되고, 패션 센스를 갖추게 될 것이다.■ 저자 캐롤라인 영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영어와 영화 및 TV 연구를 공부한 후 호주 브리즈번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헤럴드 스코틀랜드(Herald Scotland)에서 패션 작가 및 보조 디지털 편집자로 일하면서 스코틀랜드 패션 산업과 패션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1990년 토론토에 본사를 둔 그래픽 디자인 회사 햄블리와 울리(Hambly & Woolley)를 창업했다.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뉴욕타임스》, 《타임》, 《선데이 매거진》 등 많은 매체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북미 전역에서 수많은 수강생에게 디자인과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초빙대상 1순위의 실력 있는 강사로 인정받았다.지금은 컬러 스터디(https://www.colourstudies.com/)라는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사진, 미술, 저술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다. 컬러는 그의 모든 활동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며, 이번 책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기록보관소에서 영화사 및 의상에 관한 조사 활동을 광범위하게 펼쳤다.패션과 영화사 전문 작가로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으며, 《타르탄(Tartan)》, 《트위드(Tweed)》, 《스타일 트라이브스(Style Tribes)》, 《클래식 할리우드 스타일(Classic Hollywood Style)》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또한 인사이트 에디션(Insight Editions)의 《히치콕의 여주인공들(Hitchcock.s Heroines)》과 더히스토리 프레스(The History Press)에서 출간한 《로만 홀리데이(Roman Holiday)》의 저자이기도 하다.■ 역자 명선혜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통역번역학을 전공했다. 한영국제회의통역사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클래식 음악 분야 통번역 경력을 통해 거의 준전문가 수준의 전공 지식이 있으며 현재는 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브랜드 경험의 본질》, 《쓰레기의 정치학》, 《더 스타트》, 《성공하는 여자의 자격》 등이 있다.■ 차례IntroductionBLACKPURPLEBLUEGREENYELLOWORANGEBROWNREDPINKWHITE참고문헌 캐롤라인 영 | 명선혜 번역 | 리드리드출판 | 2023년 05월 BLACK 패션에서 블랙은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캔버스다. 1950년대 급진적인 보헤미안이라 불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폴로 목티를 입고 미국의 반체제 문화의 성역인 그리니치 빌리지의 허름한 술집에 모여 비트를 즐겼다. 1990년대 이후 블랙은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주요 패션 아이템이 됐다. 이러한 차림의 패션은 평범함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놈코어’라 불렸다. 시대를 초월하여 세련된 멋을 내는 블랙은 상복으로 입으면 슬픔과 상실을 나타낸다. 무솔리니의 블랙 셔츠는 파시스트적 위협을 나타내고, 미국의 흑인 무장 조직인 흑표당의 블랙 베레모는 흑인 인권을 옹호하는 강력한 표상이 되었다. 블랙은 표현의 부재, 즉 표현의 자제를 상징하며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펑크 음악의 대부 말콤 맥라렌은 “블랙은 불필요한 장식에 대한 공개적 비난입니다. 허무주의, 지루함, 공허함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블랙이죠.” 색상으로서의 블랙 블랙은 물체가 가시적 파장을 삼켜 색 스펙트럼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눈에 보인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