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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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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기억법

영원한 것은 없지만, 오래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 김규형 에세이
김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01월 | 248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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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형 지음/21세기북스/2021년 1월/248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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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문장 몇 줄, 사진 몇 컷이 하루하루 쌓여 ‘내’가 되었다.”

멈추지 않고 기록하는 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연’이 시작한 일을 ‘꾸준함’으로 완성했다. 이 책 『사진가의 기억법』의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하는 말이다. 그에게 사진과 글은 그냥 지나치면 휘발되기 쉬운 일상과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원고의 첫 장을 채우던 날도, 카메라를 들고 낯선 골목을 헤매던 날에도, 혼자 머리를 자르다 망친 날도,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던 날도 그는 어김없이 기록했다. 그렇게 기록한 순간들은 하마터면 스쳐 지나갈 뻔한 사람을 만나 친한 친구가 된 것처럼, 사라지지 않고 곁에 남아 자신의 일부가 되어주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책 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에 기록에 대한 거창한 노하우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순간과 순간이 모여 기나긴 삶이 되듯, 소소한 기록의 조각들이 하루하루 쌓여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한 컷의 아름다운 파노라마 사진처럼 보여줄 따름이다. 멈추지 않았기에 이만큼 갈 수 있었다고, 기록했기에 기억할 수 있었다고, 책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입을 모아 증언한다. 사실 그가 기록한 것은 단순히 지나버린 과거가 아니라, 잊고 싶지 않은 날들의 마음일 것이다.

 

■ 저자 김규형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미련이 많고 이별을 싫어합니다.

반대된 두 가지의 중간을 좋아합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감정,

조용한 공간을 울리는 백색소음의 여운,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의 얼음물이 주는 미지근함……

 

보통의 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이 취미이고,

인생은 앞으로 좋아하게 될 것들을 찾아내는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취미였던 사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5년 캐논 플레이샷 특별상을 수상했고, 서울을 기반한 ‘서울 스냅’을 포함 서울 관련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외에도 에어비앤비, 에잇세컨즈, 삼성, 갤럭시, SK텔레콤 등 다양한 브랜드와 꾸준히 협업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정갈하고 세련된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시와 강의를 통해 그의 사진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서울 스냅』, 『사진가의 기억법』이 있다.

 

인스타그램 @keembalance

 

■ 차례

프롤로그 _ 우연은 가끔 기특한 짓을 한다

 

Part 1.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카메라를

방향치/ 상대성이론/ 딴짓/ 처음이 있는 삶/ 창작/ 셀프서비스/ 꾸준히 작업하는 이유/ 1대 9 법칙/ 직업병/ 영원하지 않아서/ 괜찮아지지 않아도 돼/ 사진가의 기억법

 

Part 2. 그러니까 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

난 이렇게 살아볼게요/ 사회생활/ 절전 모드/ 운/ 영화 감상법/ 결과와 과정/ 평서문/ 사랑의 정의/ 남아 있는 마음의 뒤처리/ 준비 과정/ 중력/ 글쓰기 루틴/ 습관/ 좋아하는 일/ 업무분담/ 가장 좋은 것의 기준/ 빈티지/ 눈물/ 서운함에 관해/ 어른의 문장/ 장래 희망/ 평범해/ 효율/ 여유

 

Part 3. 당신의 이름이 붙어 있는 방

봄이면 좋겠다/ 이름을 적어둔 방/ 삼한사온/ 다정한 사람/ 소리 듣기/ 말을 높여요/ 소화 능력/ 브레이크 타임/ 반복 학습/ 이미 알고 있었다/ 남겨두기/ 안부/ 인생의 부가가치세/ 좋은 말/ 일회용 반상회/ 사라진 사람들/ 온도 릴레이/ 향기/ 멀티태스킹/ 멀티태스킹 2/ 조언/ 좋은 대화/ 결국은 타이밍/ 관계의 장단/ 사랑받는다는 것/ 시간/ 녹는점과 끓는점/ 좋은 이별/ 소금 맛 대화/ 인간관계 1/ 인간관계 2/ 양보/ 이런 신발/ 만 삼천팔백 원/ 변칙플레이/ 정말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제롬과 아롬/ 율무/ 사랑한다/ 쿨한 사람/ 온도

 

Part 4.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네와 만나다/ 합정과 당산/ 앤트러사이트 연희점/ 마주치는 사람들/ 여행의 정의/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최고의 여행법/ 삿포로/ 삿포로행 기차에서 만난 친구/ 웰컴 투 오스트레일리아/ 문화 충격/ 느리게 살기/ 거짓말 같은 기억/ 색안경/ 시드니/ 변덕스러운 날씨/ 뉴욕현대미술관에 내 책을?/ 나는 서울 사람입니다

 

Part 5. 취향은 늘 변덕을 부린다

봄/ 나는 그런 게 좋다/ 아이러니/ 냉정과 열정/ 우유부단/ 어떤 옷/ 시그니처의 조건/ 선호(favorite)/ 아무렴 어때/ 압구정/ 순발력/ 날씨 탓/ 박자/ 미워도 다시 한번/ 용돈/ 보호색/ 등가교환/ 시계/ 변덕/ 내게 맞는 옷/ 두고두고/ 고민은 밖에서/ 취향의 추억/ 다섯 명의 나/ 오늘도 고민한다/ 엄마의 말/ 빨간 카디건

 

에필로그 _ 그래서 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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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형 지음/21세기북스/2021년 1월/248쪽/16,000원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카메라를

방향치

나는 방향치다. 길치와 다른 게 뭐냐고 친구들이 묻지만 길은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뿐...... 정확히 말하면 동서남북 중 어디에 내가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러니 당연히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안양에서 합정으로 이사하고 학교에 갈 때마다 길을 헤맸다. 결국, 학교에 도착하긴 했지만 매번 다른 길로, 게다가 돌아서 갔다. 이전엔 한 번도 합정에서 홍대까지 걸어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지하철을 이용했으니 홍대역에서 걸어가는 길만 알고 있었다. 출발 지점이 바뀌면 문제 자체가 달라진다.

 

스스로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합정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을 이동해 홍대역에 내려서 가는 법을 택했다. 학교까지 삼십 분 정도가 걸렸다. 최단 거리로 걸으면 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반년이 지나고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서 알게 됐다. 변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시엔 지도 앱도 그걸 설치할 스마트폰도 없었다. 뭐 있었다고 해도 아주 잘 사용하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산책하거나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가끔 길을 잃으면 사진으로 찍어둔 기억을 떠올려서 길을 찾곤 했다. 특이한 방법이었지만 사진으로 찍은 장면은 잘 기억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좋은 방법이었다. 또 새로운 장소가 생기면 에이포 용지 위에 그림으로 그려둔 지도에 업데이트했다. 그 지도를 가방에 고이 접어서 넣어 다녔다. 나만의 합정동 지도였다.

 

한곳에서 오래 살게 되자 내 저주와도 같은, 아마도 없다고 해야겠지, 방향감각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꾸깃꾸깃한 에이포 지도 없이도 당황하지 않고 길을 잘 찾아다녔다. 방향을 못 잡아도 조금만 걷다 보면 알게 된다. 그때 돌아가도 된다. 지하철을 반대로 타도 조금만 가다보면 깨닫게 된다. 그때 돌아가면 된다.

 

길을 잃는 이유는 길을 찾는 데 별로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다른 것에 집중하느라 그랬겠지. 길을 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거나 하늘을 본다거나, 새로 생긴 가게에서 뭘 파는지 들여다보는 것 따위 말이다. 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고 걸으니 지도 없이도 최단 거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단 거리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예전에 길을 잃고 우연히 발견하던 새로운 것을 더는 발견하지 못하게 됐다.

 

어쩌면 제일 빠른 길은 제일 예쁜 것들을 놓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길을 헤매기로 했다. 

 

셀프서비스

함께해서 좋은 것이 있다면 혼자여서 좋은 것도 있다. 혼자 여행을 가고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는 것도, 혼자 카페에 가거나 전시를 보는 것도 어쩌면 나를 위한 셀프서비스 아닐까? 우리에겐 나를 찾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 웃긴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로 내 가장 큰 팬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는 게 좋았다. 내 시선을 또 다른 내 시선으로 바라본 셈이다. 때론 자책도 하고, 때론 날카로운 비평도 해줬다. 기특하고 영리하다며 칭찬해주는 날도 있었다.

 

어쩌면 사진은 내게 혼자 놀기의 정석 같은 것이다.

 

사진가의 기억법

아름답다는 표현에 맞는 것을 발견했다면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머리와 가슴에 기록해두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변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그러니까 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

영화 감상법

영화를 좋아한다. 그림을 좋아하듯 사진을 좋아하듯 그렇게 영화가 좋았다. 영화를 한참 보던 시기의 나는 꽤 오랫동안 내 쓸모를 증명하지 못했고, 온종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영화로 여러 가지 간접경험을 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사회로 나가 직접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일을 해내는 친구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가까운 사람들 말고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들의 인생은 어떨까? 영화니까 영화 같을까?

 

나는 더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내게 좋은 취미 활동이자 선생님이며, 친구였다. 종일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영화 하나는 봤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영화와 친해졌다.

 

집중해서 보기도 하지만, 그냥 틀어놓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집중해서 보기도 하고, 다시 흘려보내기도 했다.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영화를 보며 멋진 장면이 나올 때마다 셔터를 누르듯 캡쳐를 했다. 영화의 미장센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좋았다. 마치 사진을 찍듯이 움직이는 영상을 멈추는 것을 즐겼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사진 작업에 꽤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따라 하며 보는 것도 재밌다. 빵에 관한 영화라면 빵을 먹으며 감상하면 훨씬 더 좋다. 커피도 빠질 수 없겠지. 예전에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보는 동안 커피 석 잔을 마시고 담배 열 개비를 폈다. 감정의 동화는 물론, 같은 행동을 한다는 동질감에서 오는 쾌감이 좋았다.

 

마음에 드는 영화는 몇 번이고 봤다. 처음엔 자막이 보이고, 다음엔 대사가 들리고, 곧 배우의 표정이 보인다. 배우 뒤편의 배경과 조그마한 소품들, 빛의 방향이나 사소해 보였던 작은 것들이 보인다. 이런 것들 발견하는 내가 너무 좋았다. 나름의 생산적 활동이었을까.

 

어떤 계절이나 특정한 날에 꼭 챙겨보는 영화가 있다. 4월 1일에는 <중경삼림>, <4월 이야기>, 5월엔 <라이크 크레이지>, 7월 15일엔 <원데이>, 장마철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가을엔 <냉정과 열정 사이>, <만추>, 겨울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러브레터>. 신기하게도 메모를 해두지 않아도 나는 같은 시기에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있다.

 

그런 영화들은 볼 때마다 처음 볼 때의 상황이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몇 번을 봤든 상관 없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 예전의 나를 만나는 느낌도 든다. 게다가 같은 영화도 언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어쩌면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장면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고 답답해 보였던 주인공의 행동에도 이유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나쁜 사람처럼 보였던 부인공의 친구는 솔직한 것뿐이었고 어떤 아픔은 더 크게 어떤 이별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닮아 있다. 처음에는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가 알아갈수록 놓쳤던 장점을 발견하는 것이 그렇고 가끔은 무심한 듯 멀어졌다가도 어떤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그렇다. 마음에 들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것도 똑같다. 영화의 장면을 따라하듯 서로를 닮아가는 것은 물론 처음엔 이해할 수 없던 부분을 천천히 이해하게 되는 것도 비슷하다. 어쩌면 내게 영화는 나름의 사교활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해

‘평범함’이라는 말이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너무 크잖아, 너는 너무 작잖아.

남들은 다 그런데 너는 왜 이러니

 

평균과 다르다고, 평범하지 않다고,

특이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대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의 이름이 붙어 있는 방

이름을 적어둔 방

친구가 많이 필요했다. 방 열 개를 만들고 친구들의 이름은 방문에 적어뒀다. 이름이 많아질수록 행복했고 이름표가 떨어지면 슬퍼졌다. 매일매일 이름표가 잘 붙어 있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방 열 개를 다 채웠지만 나는 여전히 외로웠다. 방이 더 많아지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친구를 만들었다. 적혀 있는 친구의 이름을 외우지 못할 정도로 방이 많아졌다. 먼저 붙여둔 방의 이름표가 떨어져 나갔지만, 예전처럼 이름표를 확인하지 못했다. 언젠가 나는 이렇게 많은 방을 관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방 늘리기를 멈추자 빈방이 많아졌다. 매일 방의 이름표를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방은 많지 않았지만 들어갈 때마다 따뜻하고 즐거웠다. 비어 있는 방에는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만화의 이름을 걸어두기로 했다.

 

좋은 대화

머릿속에 앨범처럼 정리해둔 경험을 꺼내서

나라는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듯 보여준다.

혼자 하던 생각이 밖으로 뱉어지고 조용히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뱉어진 문장은 주변을 떠다니며 더 괜찮은 단어와 만나게 되고,

잘 맞는 그림 옆에 놓인다.

 

우리의 세계가 더 아름다워진다.

 

이런 신발

새 신발을 사면 어김없이 발뒤꿈치가 까진다. 아마도 발의 모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른 모양의 발을 가지고 있을 테니 모두에게 정확히 맞는 신발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때에 따라서 그 아픔마저도 설렘의 일종이 되곤 한다는 게 조금 신기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아프다고 신발을 구겨 신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때론 구겨진 신발이 발에 더 큰 상처를 내기도 한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네와 만나다

동네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건물의 구조, 골목의 형태, 상가의 모양, 머무는 사람들. 그런 것이 모여 동네를 만든다. 특색이 없고 심심한 동네가 있는가 하면, 다양한 개성이 넘치는 동네도 있다.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에 불이 꺼지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내내 잠잠하다가 밤이 되면 불타오르는 동네가 있다.

 

마치 사람 같다.

 

연희동을 거닐다 문득 내가 연희라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까만 생머리의 키가 큰,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에 큰 보폭으로 느리게 걷는, 연남이라는 말썽꾸러기 남동생을 둔, 흰 셔츠를 입은 소녀가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연희동에 연희와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네는 사람을 담는다.

그리고 동네는 사람을 닮는다.

 

합정과 당산

지하철을 타고 합정에서 당산으로 가면 한 정거장 만에 다리를 건너며 한강을 관람할 수 있다. 이 경로를 꽤나 좋아한다. 그러니까 약간은 늦은 주말 오후에 떠나 온통 어두워질 무렵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강과 하늘의 색은 같다. 이 구간을 지날 땐 내가 타고 있는 지하철이 유람선으로 바뀌는 듯한 경험도 하게 된다.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 여행은 가득 찬 책장 같았다. 서랍 가득, 해야만 하는 일들을 넣어두고 모두 꺼내 쓰지 못했다고 스스로 원망하던 때가 있었다. 일정과 일정 사이에 조그만 틈을 만들어 억지로 끼워넣고는 했다. 나는 뭘 하려던 걸까.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급할 것 없어. 좋았던 여행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계획한 것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온 곳이었다. 그래서 두 번, 때로는 세 번쯤 가기도 했고 그때마다 좋았다. 한 번에 모든 걸 다할 수는 없다. 가능하다고 해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하룻밤 동안 영화 세 편을 본 적이 있다. 좋은 도전이었다. 밤새 예쁜 장면, 듣기 좋은 언어, 멋진 배우들과 만났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영화의 내용이 엉키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여러 번 경험해도 괜찮다.

 

우리는 즐거워야 한다.

 

최고의 여행법

보통은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여행을 간다. 여러 번 다녀온 곳이라면 당연히 선택지가 많을 테지만 첫 여행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럴 때는 카페나 식당, 혹은 미술관이나 가게를 하나 정한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그리로 간다. 그런 뒤 다음 행선지를 그곳에서 만난 이에게 묻는 것이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 고마워.

혹시 근처에 추천해줄 만한 식당이 있을까?

근처에 로컬 패션 브랜드가 많은 곳을 알려줄 수 있어?

이따가 또 커피를 마실 건데 여기랑 비슷한 가게가 있니?

어떤 미술관을 다녀왔는데 또 다른 미술관이 있을까?

 

이런 방식인데 아직까지 실패한 적이 없다.

내겐 최고의 여행법이다.

 

뉴욕현대미술관에 내 책을?

처음엔 그냥 사진이 좋아서 주변을 찍기 시작했다. 접는 형태의 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로 처음 시작한 나만의 예술 활동은 몇 년 후에 본격적으로 사진기를 통해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딱히 날개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아니 사용하는 법을 몰랐다고 해야 맞겠다. 사진을 찍기만 할 뿐 찍은 뒤에 어떻게 할지를 잘 몰랐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보며 자기만족을 할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시는 어떻게 하는지, 책은 어떻게 내는지에 관한 지식이 있었을 리 없다. 가끔 지인들이 사진집을 내봐, 전시를 해라는 말을 했지만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저 묵묵히 내 일상을 내 시선으로 기록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많지는 않지만 내 직업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는 사람이 생겨났다. 꾸준히 사진을 찍자 내 사진을 보고 서울행 비행기 표를 샀다는 외국인도, 그리운 서울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외국에 사는 한국인도 생겼다.

 

봐봐. 서울이 이렇게 예쁘다니까. 내 시선이 이렇게 특별하다니까.

 

더는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었다. 집에서, 회사에서 늘 ‘틀리고 잘못됐던’ 나는 여기에선 좋은 시선을 가진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의 응원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결국,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던 일들을 저지르게 됐다.

 

마음먹기가 어렵지 사실 하려고 하면 못할 일이 없다. 회사를 그만두고 책 만드는 준비를 했다. 몇 달 후 사진집 『서울스냅』을 출간했다. 전시를 열고 사람을 만났다.

 

조금씩 욕심이 자라났다. 내가 만든 책이 서점과 미술관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법을 몰랐을 뿐 막상 알아보니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전화하고 찾아가고 물어보고 그대로 실행했다. 큰 서점과 몇몇 미술관에도 내 책이 진열됐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의 미술관이나 책방에도 내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의 미술관과 책방에서 파리, 런던, 뉴욕 같은 도시의 사진집은 수도 없이 봤지만, 서울 사진집은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 책이 되면 좋겠다. 내가 만든 서울 사진집이 해외의 유명한 미술관과 서점에 진열돼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인들이 내 책으로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국립현대미술관에 『서울스냅』이 전시된 것처럼 언젠가는 해외 미술관에 『서울스냅』이 꽂혀 있길 바란다. 교보문고의 예술 코너에서 『서울스냅』을 발견할 수 있듯 외국의 예술 서점에서 내 책을 쉽게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꿈이 생겼다. 없었던 목표가 선명해졌다. 아직은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 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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