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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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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신간도서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계절마다 피는 평범한 꽃들로 엮어낸 찬란한 인간의 역사
캐시어 바디 지음 |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04월 | 352쪽 |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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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어 바디 지음/이선주 옮김/현대지성/2021년 4월/352쪽/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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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사랑, 죽음, 패션, 날씨, 예술, 정치, 역사, 미술, 혁명…

꽃을 주제로 대화하는 가장 우아한 방법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꽃을 통해 의사소통을 해왔다. 사랑을 표현하고, 애도하는 마음을 전하거나 사과할 때도 꽃을 내민다. 전쟁을 기념하거나 반대할 때도, 외교사의 한 장면을 장식할 때도 꽃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영국 여성들은 수줍게 보이는 제비꽃을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꽃으로 내세웠고,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첨예한 냉전 시대의 상징으로 데이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1967년에는 총을 든 군인들 앞에서 국화를 든 청년의 모습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이 책은 꽃에 대해 우리가 평소 보지 못했던 부분, 그냥 지나쳤던 익숙한 삶의 풍경을 보다 자세하고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해주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삶을 인식하는 ‘해상도’를 높여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80장의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꽃이 그 유약하고 섬세한 이미지와는 달리 전쟁, 외교, 혁명, 투쟁과 곧잘 연결되었고, 각국의 다양한 문학, 미술, 종교, 역사, 신화와 촘촘히 관련되어 있음을 밝힌다. 계절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6가지의 꽃으로 사랑과 죽음, 예술과 패션, 종교와 정치, 음식과 영화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 인간 심리 속에서 꽃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왔는지 보여주는 이 책으로 우리의 문화적 심미안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 저자 캐시어 바디

미국 문학과 문화사에 정통한 영문학자로, 일상의 다양한 사물 및 활동이 글쓰기에 어떤 상상력을 제공하는지 탐구하길 좋아한다. 가령, 오늘날은 누구나 스포츠나 식물과 더불어 일상을 살아가지만 문학 작품에서는 이런 소재를 만나기 어렵다. 이런 일상 소재가 문학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고 상상의 원천을 제공하는지 풀어낸다.

 

저자는 꽃이 그 유약하고 섬세한 이미지와는 달리 전쟁, 외교, 혁명, 투쟁과 곧잘 연결되었고, 각국의 다양한 문학, 미술, 종교, 역사, 신화와 촘촘히 관련되어 있음을 이 책에서 밝힌다. 계절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6가지의 꽃으로 사랑과 죽음, 예술과 패션, 종교와 정치, 음식과 영화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영어와 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20세기 후반 미국 단편 소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미국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권투: 문화사Boxing:A Cultural History』, 『1950년 이후 미국 단편소설과 제라늄The American Short Story Since 1950, and Geranium』 등의 저서가 있다.

 

■ 역자 이선주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조선일보 기자, 조선뉴스프레스가 발행하는 월간지 〈top class〉의 편집장을 지냈다. 번역가로 활동하며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혼자 보는 미술관》 등을 번역했다.

 

■ 차례

꽃 모으기

 

1 데이지

2 수선화

3 백합

4 카네이션

 

여름

5 장미

6 연꽃

7 목화

8 해바라기

 

가을

9 사프란

10 국화

11 메리골드

12 양귀비

 

겨울

13 제비꽃

14 제라늄

15 스노드롭

16 아몬드

 

감사의 글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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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어 바디 지음/이선주 옮김/현대지성/2021년 4월/352쪽/16,500원


데이지

데이지가 어린이를 연상시킬 때가 정말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자그마한 크기 때문이다. 요크셔에서는 그 꽃을 ‘어린이 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꽃이 어디에서나 많이 피어 있어 어린 시절 쉽게 갖고 놀 수 있다는 게 조금 더 그럴듯한 설명이다. 어른들은 데이지 들판 (아니면 동네 공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데이지를 가지고 놀던 시절을 향수에 젖어 돌아볼 때가 많다. 때때로 그 놀이를 좀 더 어른에게 어울리는 용도로 바꾸기도 하지만.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린든 존슨이 배리 골드워터를 이기도록 도왔던 토니 슈와츠가 유명한 정치 광고를 만들면서 ‘데이지 소녀’를 떠올렸을 때도 아마 마리아와 괴물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정보를 주거나 뭔가를 주장하지 않는 광고를 처음 선보이면서 이후 선거 운동의 원칙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광고의 목적은 분명하고 단순했다. 보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휘어잡으려고 한 것이다. 그것도 60초 안에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광고 연출자는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분명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활용해야 했다. 어린 소녀가 데이지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영상이 딱 맞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냉전 시대에 사는 데이지 소녀는 미친 듯이 날뛰는 괴물보다 더 무시무시한 위협과 마주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소녀가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며 숫자를 세는 장면으로 영상은 시작한다. 1, 2, 3, 4, 5, 7, 6, 6, 8, 9, 10…. 소녀는 숫자를 세면서 귀엽게 버벅거린다. 그다음 굉장히 정확한 로켓 발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소녀의 눈을 클로즈업하자 핵폭탄이 터져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장면이 검은 눈동자에 나타난다. 충동적이고 호전적인 골드워터에게 표를 주면 미국인이 맞을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광고에서는 골드워터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의 자녀가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이제 결단할 때입니다. W. H. 오든의 시 <1939년 9월 1일>에 나오는 구절처럼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니면 우리는 죽습니다’”라고 읊조리는 존슨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제야 “11월 3일에 존슨을 대통령으로 뽑으세요”라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 광고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 광고는 공식적으로 단 한 차례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뉴스에 계속 나오면서 충격을 주었다. 존슨은 대통령 선거에서 61퍼센트의 표를 얻으면서 당선했고, 데이지를 떼어내던 3세 소녀 모니크 코질리어스는 스파게티오와 쿨 팝스의 광고 모델이 되었다.

 

‘데이지 소녀’는 이제 정치 광고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고, 공화당(랍 애스토리노와 마이크 허커비)과 민주당(힐러리 클린턴)이 모두 최근에 다시 활용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예측 불가능하고 호전적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핵 위협이 어느 때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모니크를 다시 불러냈다. 코질리어스는 꽃잎을 떼어내던 세 살 때 모습을 다시 보면서 “1964년의 제 모습이에요. 우리가 어렸을 때 느꼈던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아이들은 다시 겪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핵전쟁 위협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정말 무시무시해요.”라고 말한다.

 

카네이션

미국 어머니날에 관한 이야기다. 따로 날을 정해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하는 관습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초기 기독교 교회는 이 관습을 받아들여 어머니 주일(부활절 3주 전)로 바꾸었다. 이 관습은 집안일을 하는 하인들이 자신이 세례받은 교회(어머니 교회와 가족을 찾아가도록 휴가를 주는 날로 진화했다. 현대의 어머니날은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 모성의 정치적인 중요성에 관한 19세기의 견해 그리고 여성의 역할과 가정생활의 변화에 따른 20세기 초의 복잡한 감정에서 특별히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908년 5월 10일 일요일, 애너 자비스라는 여성이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세인트 앤드루 감리교회 모임에 참석한 500명의 어머니에게 흰색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선물하면서 그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은 넉넉한 마음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선언에 가까웠다. 자비스는 이후 6년 동안 미국 의회를 상대로 끈질기게 로비를 벌였고, 1914년이 되자 미국 의회는 투표를 통해 “어머니들에 관한 사랑과 존경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4년 후 미국 플로리스트 협회는 100년이 넘도록 계속 영향을 끼친 표어를 내세우며 전국적인 공개 홍보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한 번쯤 들어보았고, 계속 영향을 끼치고 있는 ‘꽃으로 말하세요(Say it with Plowers)’라는 표어다. 플로리스트 협회는 꽃 구매를 일상생활의 일부로 만드는 게 목표였지만(비슷한 시기의 축하 카드 제조업체들처럼), 흩어져 사는 현대 가족이 전화와 전보를 이용해 서로 선물을 보내는 정기적인 기념일과 의례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월간지 『플로리스트 리뷰』가 지적했듯, 어머니날은 멀리 있는 부모님께 특별히 연락을 드리는 날이기도 해서 ‘플로리스트’에게 정말 좋은 기념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자비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머니날을 값비싼 선물을 보내는 날이 아니라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는 날”, 곧 ‘가정의 날’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908년에는 꽃 한 송이에 0.5센트였지만, 1920년에는 (의회에 로비할 때는 반갑게 연대했던) 플로리스트들이 카네이션 한 송이를 1달러에 팔 정도로 가격이 뛰었다. 자비스는 장삿속으로 물든 분위기를 바꾸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맨 먼저 그는 플로리스트의 장삿속을 함께 거부하면서 대신 미국 국기나 ‘비싸지 않고 소박한’(공짜로?) 민들레 같은 꽃을 선물하자고 제안했다. 어머니날 국제협회는 그다음 좀 더 독특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흰색 카네이션이 새겨진 배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뉴욕타임스』는 “플로리스트들이 아무리 비싸게 팔아도 카네이션은 잘 팔렸다”라고 보도했다. 하얀 카네이션만으로는 돈을 많이 벌 수 없자 플로리스트들은 자비스의 아이디어를 목적에 맞게 바꾸어 활용했다. 다양한 꽃을 선택하면 훨씬 더 만족스럽게 기념할 수 있다고 광고하기 시작했고, 고객이 다양한 품종, 다양한 색상의 꽃을 선택하게 유도하려고 두 줄의 문구를 만들어냈다.

 

살아계신 어머니를 위해서는 밝은색 꽃을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할 때는 흰 꽃을

 

1914년 어머니날에는 급성장하는 꽃시장이 최대 호황을 누렸고, 100여 년이 지난 다음에도 그런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인이 2019년 어머니날에 꽃을 사려고 쓴 돈이 26억 달러에 이른다. 

 

여름

장미

장미가 인간의 성관계를 떠올리게 하지 않았던 때는 찾아보기 어렵다. 성적인 갈망에 관한 중세 우화인 ‘장미 소설’(퇴폐적인 색채가 강한 강렬한 연애소설)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현재를 즐겨라’ 사상까지 (버트 헤릭은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라”라고 충고했다), 오르가슴 분출에 관한 빅토리아 시대의 풍자부터(토머스 하디 소설의 등장인물 수 브라이드헤드의 뺨은 연분홍 장밋빛이었다) 꽃잎 같은 외음부 모양을 보여주는 해나 윌크스의 1970년대 조각까지 성과 관련 없는 연인과 장미 담론은 사실상 없다.

 

연애소설과 에로소설의 주인공을 설명할 때도 장미의 일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드먼드 스펜서(그리고 다른 많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는 꼭 다문 장미 꽃봉오리 같은 처녀의 약속으로 극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그다음 활짝 핀 향기로운 꽃 같은 열정으로 발전하고 (보라, 잠시 후면 얼마나 더 대담하고 자유로워지는지/그녀는 벗은 가슴을 활짝 벌려 보여준다), 결국 꽃잎이 떨어지면서 사랑이나 사랑하던 사람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프랑스 초현실주의자 조르주 바타유는 시들어가는 장미를 비유하길, 한때 구름까지 데려다줄 것 같던 줄기에 매달린 채 우스꽝스럽게 죽어가는, 진하게 화장한 늙은 과부와 비슷하다고 다소 험악하게 빗댔다. 보들레르의 『악꽃』처럼 바타유도 장밋빛 명성에 흠집을 내겠다고 결심했고, 장미의 ‘아름답고 천사 같은 순수함’은 금방 시들고, 수술의 추악한 모습만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바타유의 손에서 장미의 소설은 희비극이 된다. 외설이었다가 이상을 추구했다가 곧장 외설로 돌아간다.

 

성관계로 전염되는 질병과 장미는 끈질기게 연관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임질을 ‘성병에 걸린 장미’라고 부르기도 했다. 『경험의 시』에 실린 시 <병든 장미>를 쓰면서 윌리엄 블레이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벌레가 진홍색 기쁨이 넘치는 장미 침대로 기어들어 간다”는 구절의 의미를 다양하게 유추하자면 ‘보이지 않는 벌레’를 매독이나 임질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1960년대 말에는 베트남과 대만 여성이 미국 병사들로부터 ‘사이공 장미’(가장 가시가 많은 장미, ‘임질’이란 의미)가 전염될까 봐 걱정했다.

 

이런 역사가 짧지 않기에 장미는 질병 예방 캠페인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 되었고, 에이즈 바이러스가 한창 유행할 때는 특히 더 그랬다. 홍콩 병원에는 “베트남 장미(성병)에 걸리셨군요. 콘돔을 사용하세요. 다음번에는 운이 그렇게 좋지 않을 수 있어요”라고 직설적으로 경고하는 에이즈 관련 단체 <에이즈 컨선〉이 내건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독일에서는 꽃처럼 말린 콘돔 사진과 괴테의 시 〈들장미〉 중 앞 구절인 “한 소년이 보았네”라는 글귀가 실린 포스터로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함께 하자’ 캠페인을 펼쳤다. 주로 성적인 유혹과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시 〈들장미>를 선택한 일은 적절했다. 소년이 그 작은 들장미를 꺾겠다고 말하자, 장미는 그 소년을 찔러서 자신을 ‘절대 잊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소년은 듣지 않고, 에이즈 전염에 관한 비유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 같다. 시에서는 찌르는 장미만 고통을 받고, 장미를 꺾는 소년은 멀쩡한 것 같다.

 

목화

목화에서 실을 뽑고 직물을 짜는 과정은 기계 덕분에 쉽고 빨라졌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는 재배한 목화를 수확하는 기계가 전면적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그때까지는 한 꾸러미(227kg)를 수확하려면 600시간 동안 허리가 휘도록 일해야 했다. 그런 노동은 노예들이 담당했다. 1808년에 노예무역이 끝나기 전까지 20만 명 정도가 아프리카에서 새로 생긴 미국의 농장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100만 명 정도는 버지니아, 메릴랜드, 켄터키주의 담배 농장에서 남쪽으로 실려 왔다. 간단히 말해 영국의 섬유산업과 산업화는 미국의 확장된 영토와 노예 노동에 대부분 의존했다고 할 수 있다.

 

목화꽃은 사흘밖에 피어 있지 않지만, 목화를 돌보는 일은 1년 내내 이어진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뉴욕에서 납치되어 루이지애나에 노예로 팔렸던 솔로몬 노스럽은 남부 농장의 상황을 가장 생생하게 전했다. 노스럽은 목화밭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노예 폐지론을 지지할 수 있도록 회고록 『12년 동안의 노예 생활』(1853)을 펴냈다.

 

괭이질을 빨리하는 사람이 앞장을 선다. 그는 동료들보다 먼저 채찍을 맞는다. 동료 중 한 명이 그를 앞서 나가도 채찍을 맞는다. 한 사람이 뒤처지거나 잠시 빈둥거려도 채찍을 맞는다. 사실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채찍질을 당한다. 4월부터 7월까지는 계속 괭이질을 한다.

 

8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 계속 수확을 했다. 노예들은 긴 자루를 들고 목화를 딴 후 각 줄의 끝에 놓인 바구니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그 바구니들의 무게를 쟀다. “노예들은 바구니를 들고 목화씨를 빼는 조면기가 있는 곳에 가면서 두려움에 떨었다”라고 노스럽은 기록한다.

 

무게가 덜 나가면, 즉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면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4.5~9킬로그램 정도가 더 나가면 다음 날 수확해야 할 양이 그만큼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수확한 목화가 많든 적든 조면기 쪽에 갈 때면 언제나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가장 심한 벌은 실수로 면화의 가지를 부러뜨린 사람이 받았다. 

 

가을

사프란

사프란 1킬로그램을 만들려면 20만 송이의 꽃과 400시간 이상의 노동이 필요하다. 사프란이 그램당 가장 비싼 농산물이자 도둑들이 노리는 물건이 된 게 이 때문이다. 사프란은 가장 귀한 부분만 아니라 별로 필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법의 규제를 받았다. 사프란을 만들면서 암술머리를 떼어내고 남은 크로커스는 쓰레기로 여겨 함부로 버렸다. 1574년, 영국의 소도시 사프란 월든의 슬레이드 강이 보라색 꽃잎 때문에 막혔고 앞으로 함부로 버리면 이틀 동안 족쇄를 채우겠다는 포고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사프란 도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374년, 수송 중이던 사프란 363킬로그램을 바젤 근처 귀족들이 가로채자 14주 동안 사프란 전쟁이 벌어졌다.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귀족들은 사프란을 돌려주었다. 런던 중앙 형사법원의 기록을 보면 19세기까지 약재상이나 창고에서 사프란을 훔쳤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1835년에는 훔친 사프란 907그램의 가격은 21파운드였는데, 1871년에는 250파운드로 치솟았다.

 

사프란은 로마제국 전체에서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그 이후, 아랍이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할 때까지 유럽에서는 사용량이 많지 않았다. 아랍 정복 후 점점 더 북쪽에서 재배를 늘리면서 14세기에는 음식과 약, 염색 재료로 널리 사용했다. 향신료는 보통 음식의 풍미와 색깔을 더하기 위해 아랍 영향을 많이 받았던 중세 유럽의 요리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사프란은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일상에서 부를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사프란 500그램이 말 한 필 가격과 맞먹었다).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에서 광대는 “워든 파이(배 파이)에 색깔을 내려면 사프란이 필요해”라고 주장한다. 광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 당시 유럽 여기저기에서 펴낸 요리책에는 사프란으로 노랗게 색을 내거나 음식 위에 사프란을 뿌리는 방법, 페이스트리를 굽기 전 계란물을 바를 때 사프란을 섞어 풍미를 더하는 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리처드 2세를 위해 일하던 수석 요리사들의 최상급 요리법 196가지를 모은 영국 최초의 요리책 『요리법The Forme of Curye』(1390)에서도 사프란은 음식의 주재료였다. 행사 규모가 크고 화려할수록 사프란을 많이 사용했지만, 간단한 요리에도 사프란을 넣었다. 예를 들어, 쌀을 그냥 죽처럼 끓인 다음 소금과 아몬드밀크를 넣고 마지막으로 색깔을 내기 위해 사프란을 조금 넣는 요리도 있었다.

 

음식에만 사프란을 뿌린 게 아니었다. 그림이나 책의 삽화에 칠하는 금빛 물감의 주재료가 사프란이었다. 예를 들어, 각 장이 시작될 때 원색의 대문자 주위에 금빛을 칠해 화려하게 장식했다. 사프란은 중세의 다른 물감 재료보다 준비하기 쉬웠다. 그냥 물이나 달걀흰자에 암술머리를 약간 넣어 우려내기만 하면 됐다. 금빛을 내기 위해 사용한 다른 재료인 수은이나 비소처럼 유독성도 없었다. 프랑스 북부 생토메르 출신의 장인 피터는 시칠리아섬의 사프란은 금보다 더 아름답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사프란은 살균제로도 활용되어 부자들은 바닥이나 벽난로 속에 뿌렸다. 전염병 퇴치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도 모두 플라시보 효과였을 것이다. 오늘날 건강 산업에서도 환자들은 비싼 재료일수록 효과가 좋다고 믿는다. 또 식물의 특징을 보면 의학적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사프란은 특히 색깔을 보면서 사용법을 짐작했다. 그래서 황달이나 요로질환 등 노란색과 관련된 질환에 처방했다. 심지어 털갈이하는 카나리아의 깃털을 샛노랗게 만들려고 사프란을 먹이기까지 했다.

 

양귀비

1918년 11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단 이틀 전에 모이나 마이클이라는 미국 대학교수는 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 의료용품 광고에서 우연히 맥크래의 시를 발견했다. 1914년에 프랑스를 방문한 적이 있던 마이클은 당시 뉴욕에서 해외로 나갈 YWCA 자원봉사자들을 훈련하고 있었다. 그는 이전부터 그 시를 잘 알고 있었지만, 함께 실린 필립 리포드의 놀라운 그림을 보고 감동해 행동에 나섰다. 병사들이 양귀비밭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이었다. 그는 죽은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붉은 양귀비’를 기억하고, 옷에 달고, 다른 사람도 달도록 설득하겠다고 맹세하면서 자신의 시도 몇 구절 썼다. 그는 비단으로 만든 꽃을 찾아 뉴욕을 뒤지면서 그 운동을 시작했고, 워너메이커 백화점에서 양귀비 조화를 찾아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양귀비 운동의 규모가 갑자기 커졌다. 1920년에 미국 재향군인회 조지아 지부 관계자를 만나 양귀비로 죽은 병사를 추모하자고 설득한 게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운동은 프랑스를 거쳐 더 정확히는 프랑스의 열정적인 사회운동가 안나 게랑을 통해 영국에 전해졌다. 그는 애틀랜타에서 ‘미국-프랑스 어린이 연합’을 위한 기금을 모으다 천으로 만든 양귀비를 처음 보았다. 기금 모금을 해왔던 그는 곧장 양귀비를 상징으로 활용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지를, 1921년 9월에 런던으로 가서 영국 재향군인회 회장 더글러스 헤이그와 그 문제를 의논했다. 게랑은 면직물로 만든 양귀비 백만 개를 가져가라고 헤이그를 설득했고, 그들은 그 양귀비로 그해 11월에 10만 6천 파운드(오늘날 300만 파운드 정도의 가치)를 모금했다. 영국 재향군인회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고, 캐나다, 남아공,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 프랑스에서 싸웠던 많은 영연방 국가는 전사자를 추모하는 상징으로 양귀비를 사용했다.

 

양귀비가 전사자 추모의 상징이 되면서 전쟁과의 관련성이 다시 시작되었다. 몇 세기에 걸쳐 꽃 자체가 부상한 군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도 했고, 양귀비의 유액으로 만든 진통제는 중독성은 있었지만, 매우 효과적이었다. 진통제에 대한 수요가 무척 커서 확보 전쟁이 다시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 붉은색 개양귀비(학명 Papaver rhoeas)가 아니라, 흰색 혹은 분홍색으로 크고 튼튼하고 졸리게 하는 악명 높은 아편 양귀비 (학명 Papaver somniferum) 이야기를 해보자. 두 양귀비는 자주 혼동된다. 존 키츠는 시 〈가을에>에서 “추수가 끝나지 않은 밭고랑에서 양귀비 향기에 취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두 가지 양귀비를 뒤섞었다. 그리고 프랭크 바움이 쓴 동화 『오즈의 마법사』(1900)를 보면 도로시와 도로시의 강아지 토토가 붉은색 양귀비밭에서 자극적인 향기를 맡고 잠에 빠져든다. 겁쟁이 사자가 용감하게도 도로시를 구하려고 하지만, 양귀비 향기가 너무 강해 저항할 수가 없다. 향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이 도로시를 그곳에서 구출해낸다. 붉은색 개양귀비에도 약한 진정제인 레아딘 성분이 조금 들어 있기는 하지만, 지나가다 냄새를 맡는 정도로는 아무도 잠들지 않는다.

 

아편 양귀비밭 역시 별로 해롭지 않다. 효과가 좋은 진정제를 얻으려면 상당한 추가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얇고 날카로운 칼날로 덜 자란 꼬투리를 베어 자국을 낸 후 양귀비 유액을 추출하는 게 전통적인 방식이었다(며칠 동안 서너 차례 반복한다). 베인 자국에서 흘러나온 우유 같은 유액이 끈적끈적하게 엉기면 긁어내서 말린다. 1만 제곱미터의 양귀비밭에서 1년에 12킬로그램의 아편을 만들어낸다. 현재 아편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은 아프가니스탄이다. 탈레반은 2000년에 양귀비 재배를 금지했지만, 이듬해 미군과 영국군이 공격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자 양귀비 재배는 다시 시작되었다. 어떤 양귀비밭은 공습을 받았고, 미군과 연합군이 양귀비를 베거나 제초제를 뿌리는 장면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농부들은 이렇게 수익성 좋은 작물의 재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양귀비 재배 면적이 미군과 연합군의 공격을 받기 이전인 2001년에 738제곱킬로미터에서, 2017년 3,278제곱킬로미터로 급격하게 늘었다. 

 

겨울

제비꽃

지중해 지역과 서남아시아의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에는 제비꽃이 약과 사탕, 셔벗, 화환 등의 재료였다고 하고, 신화에서 제비꽃은 죽음과 부활 혹은 한 생명에서 다른 생명으로의 변신을 의미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로마인들은 피와 같은 색깔이라고 생각한 크로커스, 아네모네, 히아신스 같은 몇 가지 봄꽃으로 죽은 사람을 추모했다. 하지만 무덤을 꽃으로 장식하는 특별한 날 (‘제비꽃의 날', '장미의 날’ 등)의 탄생에는 제비꽃(봄의 시작을 상징)과 장미(봄이 끝났음을 상징)만 그 역할을 담당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레어티스는 오필리아의 무덤을 보면서 여동생의 어여쁘고 청정한 몸에서 금방 제비꽃이 피어나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존 키츠는 무덤들 사이로 제비꽃이 어떻게 퍼지는지 들으면서 기뻐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친구 조셉 세번에게 벌써 자신의 몸 위로 제비꽃이 자라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비꽃의 부활에는 정치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파르마의 제비꽃을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1814년,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추방되자 지지자들은 봄을 상징하는 제비꽃처럼 그도 돌아온다고 확신했다. 장 도미니크 에티엔 카뉘의 동판화 〈1815년 3월 20일의 제비꽃>은 나폴레옹이 파리에 다시 등장한 때를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에서 꽃잎과 나뭇잎 사이에 숨어 있는 나폴레옹의 옆모습과 비스듬한 모자(1) 그리고 아내 마리 루이즈(2)와 아들(3)의 옆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제비꽃은 오랫동안 죽음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추모용 꽃으로 자주 이용되었다. 아니, 오히려 캐서린 맥스웰의 주장처럼 “잊었다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꽃이 되었다. 제비꽃은 사실 장례식 관행보다는 향기가 작용하는 방식 때문에 추모용 꽃으로 널리 쓰인다. 제비꽃이 독특한 향기를 내게 하는 이오논라는 성분은 일시적으로 후각을 마비시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향기가 사라진 것 같지만, 잠시 후 되살아난다.

 

1900년에는 제비꽃이 중산층 삶의 많은 부분에서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제비꽃 향의 탈취제로 입 냄새를 없애고, 설탕에 졸인 제비꽃잎(지금도 프랑스 툴루즈의 한 가게에서 판매한다)으로 케이크를 장식했다. 그리고 최신 제비꽃 향수를 손목이나 손수건에 뿌렸다. 룬드보그의 ‘바이오 바이올렛’(1895), 코티의 '라 비올레트 푸르프르'(1906), 뮬헨스와 크로프의 ‘라인 바이올렛’(1910) 등 괜찮은 향수도 많았다. 합성 성분이 들어간 조금 더 복합적인 향수에는 겔랑의 ‘뢰르 블루’(1912)가 있었다. 아마도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나오는 애매모호한 ‘제비꽃 시간’이 풍기는 향기일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에 등장하는 도리언 그레이는 웃옷에 커다란 파르마 제비꽃을 꽂았지만, 정작 오스카 와일드는 ‘감옥 생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레딩 감옥으로 플로리스의 ‘캔터베리 우드 바이올렛’ 향수 한 병을 갖다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기가 바뀔 무렵, 제비꽃은 완전히 현대적으로 변신했다. 이제 더는 온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토머스 후드의 시처럼) “숲속의 베일을 쓴 수녀 같은 꽃”이 아니었다. 부유한 도시의 여왕들에게 어울리는 사치품으로 변신한 것이다. 모피 코트에 제비꽃을 달았던 (깁슨이 그린 미녀 같은) 멋쟁이 여성부터, 제비꽃 색깔의 옷을 입은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에게서 영감을 얻으려던 레즈비언 시인, 제비꽃과 은방울꽃의 보라색과 흰색 그리고 녹색을 상징색으로 삼았던 여성사회정치연맹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제비꽃과 관련을 맺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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