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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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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약・칼럼

엄마와 딸의 심리학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클라우디아 하르만 지음 | 장혜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03월 | 308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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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하르만 지음/장혜경 옮김/현대지성/2021년 3월/308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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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상처를 주고받을 것인가, 사랑을 주고받을 것인가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사랑받는 법”

 

이 책은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화해의 책이다. 어떻게 상처 주는 행동 패턴에서 벗어나 제대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먼저, 엄마와 맺었던 관계 패턴을 이해하고, 왜 엄마가 우리를 그렇게 대했는지 알아야 한다.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그 당시 많은 엄마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생존이 최우선이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감정은 사치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교육은 너무 엄했고, 많은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늘 남자가 우선이었으며, 여자는 그저 시집만 잘 가면 그만이라던 세상이었다. 혹시 오빠와 남동생 대학 보내느라 엄마의 꿈을 접지는 않았을까? 여자라서 늘 다정하고 얌전해야 한다고 교육받지는 않았을까? 속마음을 한 번도 드러내지 못한 채 남편 뒷바라지만 한 것은 아닐까?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혼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드러내기는커녕 짜증을 내고, 소리쳤던 게 아닐까?

 

엄마의 삶을 들여다볼 때 엄마가 왜 우리를 서툴게 대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왜 엄마의 상처를 줄곧 반복하는지 그 실마리가 보인다. 그것이 시작이다. 이 책은 그 시작을 돕는다.

 

■ 저자 클라우디아 하르만

1951년에 태어나 프리랜서 기자로 오래 활동하였으며 현재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 역시 심리치료를 공부하며 어린 시절,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까지 겪은 많은 문제의 이면에 엄마와의 갈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리치료를 통해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완벽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막중한 책임을 떠넘겼음을 깨달았다. 그제야 비로소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엄마를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었다고 믿는다.

 

평소 가족의 애착과 관계 역학 및 그것이 성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많은 관심을 두고 연구하면서, 임상에서는 신체지향 심리 치료와 대화치료법을 주로 활용한다. 현재는 독일 에센에서 살고 있다.

 

■ 역자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심리학>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내 인생 내가 결정합니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숲에서 1년> <나무 수업>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들어가는 글

2012년 개정판 서문

2019년 개정판 서문

 

1장 엄마도 사람이다

2장 둘이서 추는 ‘애착의 춤’

3장 엄마와 나의 이야기

4장 과거의 메아리

5장 알면 바뀐다

6장 엄마의 인생을 들려줘

7장 사연을 읽다

8장 더는 못하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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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하르만 지음/장혜경 옮김/현대지성/2021년 3월/308쪽/15,000원


엄마도 사람이다

다채롭고 적응력이 뛰어난 엄마라는 종

엄마라는 종은 세상에서 가장 다채로운 생명체이다. 어떨 땐 괴물이 되었다가, 또 어떨 땐 불쌍한 아이가 되었다가, 어떨 땐 무서운 흡혈귀로 변신한다. 온 세상을 떠받칠 듯 강인하다가도 곧 무너질 듯 나약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가도 미워 죽을 것 같으며,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다가도 걱정이 되어 잠이 안 올 지경이다. 어떻게 신은 이토록 다채로운 피조물을 창조했을까?

 

“전부 내 책임이야!”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여기에 특수한 능력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엄마만의 능력인데, 바로 모든 실패를 자신이 떠안겠다는 결연한 마음가짐이다.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를 때리면 엄마는 고민에 빠진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이가 너무 뚱뚱하거나 야위어도 혹시 자신이 아이에게 정서적으로나 영양학적으로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닐까 고민한다. 자식이 운동이나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다른 아이들보다 진도가 늦으면 의욕을 고취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못해도, 옷이 찢어져도 다 자기 잘못이다.

 

그 책임감은 시한을 모른다. 엄마는 자식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영원히 자기 소관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의 행복은 엄마 덕분이고, 자식의 고단한 인생은 엄마 탓이다.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이야기

그럼 우리는? 딸들은 어떤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불평을 한다. 그 누구보다 불평불만이 많다. 늘 뭔가가 부족하다. 엄마가 왜 그랬을까? 그렇게 했어야지! 그렇게 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불평은 평화를 위협하고 서로를 괴롭히는 화약고이다.

 

대체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을까? 한편에는 엄마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괴롭다고 하소연하는 딸들이 있다. 엄마의 잔소리가 비에 젖은 낙엽처럼 착 달라붙어 종일 떨어지지를 않는다. “응, 케이크 맛있어…… 아니, 아무것도 필요 없어…… 알았어, 집에 도착하면 연락할게.” 딸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이 한마디뿐이다. “제발 간섭 좀 그만해!” 이들이 원하는 엄마는 엄마가 아닌 그냥 여자 자식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엄마가 이제 자식 걱정은 그만하고 자기 일을 하거나 밖에서 문화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그런 간섭이 그립다는 딸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엄마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거나 자기 몸매 가꾸는 데에만 혈안이 된 여자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이다. “엄마, 밥 좀 해줘…… 엄마, 나가면 전화 좀 해…… 엄마는 나한테 관심도 없지?”

 

먼저 인간이, 그리고 여자가, 그다음에야 엄마가 된다

엄마도 한낱 인간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의 핵심 주제 또한 바로 이 말에 담겨 있다. 우리 문화 속에서 모녀 관계는 주로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일방통행일 때가 많다. 한마디로 “너는 주고, 나는 받고”, “너는 의무를 다하고, 내겐 권리가 있고” 이런 식이다.

 

하지만 미대륙에 사는 여러 원주민 부족은 엄마의 역할을 우리와는 다르게 본다. 그곳의 원칙은 이렇다. “넌 자식이 필요로 할 때까지만 엄마야, 아이가 자라면 엄마의 의무에서 해방될 거야. 육아도, 아이의 요구에도 끝이 있지. 아이가 자라면 알아서 잘 살 테니 엄마 자식 관계도 끝나는 거야.”

 

이런 생각을 낳은 기본 이념은 이렇다. 당신은 먼저 인간이고, 그다음이 여자이며, 그다음이 엄마다. 아이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엄마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예전에 그랬듯 온전히 여자로 돌아가 자기 삶, 남편, 공동체에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기쁨과 고통을 느끼며, 결점과 능력을 지닌 채, 소망과 목표를 추구하는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엄마의 역할은 한시적이다. 그것이 끝나면 모녀의 관계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여자 대 여자,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시작된다.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우리 인생은 엄마 배 속에서 시작된다. 당시 우리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엄마와 하나였다. 임산부의 마음을 울리는 사건은 태아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임산부가 불안하면 태아도 불안하다. 엄마가 편안하면 아이도 편안하다. 세상으로 나온 아이에게 엄마는 거울이다. 삶이, 소통이, 무엇보다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반응하고 엄마의 정서 상태에 맞추어 진동한다. 아이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다. 엄마와 하나가 되고픈 아이의 욕망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무엇을 내어주건 아이는 엄마의 상태에 반응한다. 애착이 무엇이며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엄마에게서 배운다. 특히 딸은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빠 및 다른 남성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보고 배운다. 

 

둘이서 추는 ‘애착의 춤’

사랑이란 성장하게 하되 하나가 되는 것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까 말까? 요즘 독일에선 어린이집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령 『슈피겔』지에는 “아이에게 몇 명의 엄마가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사방에서 학자들의 말을 끌어다 대며 다양한 대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태어난 후 3년까지는 한 사람의 보호자하고만 애착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 “8~12개월 아이는 부모가 없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이런 논란을 보면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애착'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질문 자체가 혼란을 유발한다고 생각한다. 몇 명의 엄마가 필요한지가 아니라 아이가 엄마로부터 정확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애착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이 논란을 쫓아가다 보면 결국 종착지는 한 단어로 귀결된다. 다 알면서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그 단어, 바로 사랑, 여론은 사랑이라는 말을 낭만적인 유물 정도로 취급한다. 기능에 초점을 맞춘 이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아이가 신뢰를 품고 세상으로 걸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어린이집이라는 안전한 세상으로 걸어가기 위해서도 당연히 사랑이 필요하다. 인간 애착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와 자식의 사랑이 그렇게 쉬웠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성별을 막론하고 부모 자식 관계에선 거리가 중요하다. 인간은 친밀함을 갈망하면서도 또 한편 자립을 바란다.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도 독립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마치 둘이서 손을 잡고 추는 춤과 같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이것이 모든 관계의 리듬이다.

 

태어난 후 몇 달 동안 우리는 엄마와 함께 자신만의 기본 리듬을 익힌다. 그렇기에 엄마와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첫 질문은 이것이다. '엄마는 이 춤을 얼마나 잘 췄을까?' 엄마가 박자를 모르거나 모성애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면 춤을 추기 힘들다. 모르는 것이 나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을 나누어줄 수는 없다. 우리는 어땠을까? 엄마와 원 없이 실컷 춤을 추었는가? 첫 박자를 맞춘 후 이내 춤을 멈추고 말았는가? 춤은 앞으로도 끝없이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가 엄마와 함께 배운 이 기본 리듬은 그 이후에 있을 모든 춤의 박자를 결정한다.

 

눈을 맞추며 아이는 엄마와 춤을 춘다

대니얼 스턴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성인 두 명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6~7초를 넘기지 않는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거나 격한 논쟁에 휘말린다. 오랜 시선 교환이 좋든 나쁘든 신경 시스템을 강하게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견딜 수 있는 경우는 둘뿐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 그리고 엄마와 아이. 이들은 아무 말 없이 30~40초 동 안이나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엄마는 이미 사랑에 빠진 상태이고, 아이는 엄마와 함께 사랑을 배운다. 둘은 완전히 서로에게 끌려 들어간다. 이런 시선 교환은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고 아이는 굳이 특별한 사람이 되거나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늘 온전하고 헌신적인 순간을 갈망한다.

 

눈을 맞추면서 엄마와 아이는 춤을 춘다. 두 사람이 같은 박자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흔드는 사랑의 춤, 아이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엄마가 반짝이는 눈으로 아이를 비추어 준다. 뜨겁고 강렬한 기쁨이 탄생하고, 둘은 깊은 결속을 경험한다.

 

엄마에게 배우는 스트레스 해소법

두뇌에게는 기쁨도 흥분이다. 엄마와 오래 시선을 주고받으면 아이는 기쁜 나머지 과도하게 흥분해버리기 때문에 이 '버거운 상태'에서 다시 빠져나오려고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린다. 그렇게 마음 상태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한 후 다시 엄마와 시선을 맞춘다. 그 말은 감정을 참고 견디는 법, 쾌적하고 편안한 상태를 회복하는 법을 아이가 배운다는 뜻이다. 엄마와 시선을 맞추다 적당한 때에 시선을 외면함으로써 아이는 이 방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엄마와 더불어 느끼는 기쁨은 정신건강에 필요한 자기조절을 배우기 위해 꼭 필요한 흥분이다. 이 원리는 아이가 흥분을 경험하는 모든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공복감, 불안, 불쾌감 같은 힘든 상황을 만나면 아이는 흥분에서 빠져나와 다시 안정을 찾아야 한다. 바람직한 경우라면 이럴 때도 엄마는 아이가 다시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고 이때 ‘다 잘될 거야’라는 느낌이 아이의 두뇌에 각인된다.

 

하지만 엄마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아이에게 ‘다 잘될 거야’라는 느낌을 전해주기가 힘들다. 스스로 고통에 젖어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아이의 스트레스 해소를 도와주기 힘들고, 심한 경우 엄마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그럼 아이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게랄트 휘터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엄마가 흥분 상태에 이르면 그 흥분이 자동적으로 아이에게 전달된다. 이는 밖에서 마구 날뛰는 개 주인과 같다. 개 주인은 자기 개가 어디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항상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그 불안, 흥분 상태는 개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는 안정과 친밀함을 갈구한다. 그것이 있어야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부모나 보호자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의 도움으로 아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잘 참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필요하면 도움을 받고 그럼으로써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차곡차곡 확신이 쌓이면 아이는 신뢰를 가득 안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애착이란 아이가 안전하게 걸어가게 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특히 엄마와 자식 간 애착이란 아이가 안전하게 걸어가게 한다는 의미이다. ‘애착’이라는 단어가 뭔가 달라붙고 붙잡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좀 모순이라는 느낌을 풍길 수도 있다. 애착이 “걸어가게 한다”는 말과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애착 이론은 연결하는 끈과 걸어가게 하는 것, 둘 다를 연구한다. 그리고 안전한 항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안착시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이는 아빠나 다른 보호자와도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엄마는 1차 보호자이므로 누구보다 더 안전한 항구다. 아이는 엄마와 이어져 있는 동시에 매일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성장한다. 엄마는 파도가 높은 날에도 항구에 서서 아이를 기다리고 지켜준다. 이런 안전한 항구에서 아이는 주변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얼른 다시 안전한 항구로 돌아온다.

 

힘들 때마다 엄마는 기댈 곳이 되어준다. 배가 고프거나 놀라거나 무섭거나 아플 때 엄마는 아이를 진정시킨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 잘될 거야.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다시 밖으로 나가도 돼.” 그렇게 엄마는 조금씩 아이를 떠나보낸다. 이런 신뢰가 있으면 아이는 세상을 마음 놓고 탐구할 수 있다. 그렇게 차근차근 아이는 안전과 위안과 온기와 사랑을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확신에서 자유와 자율의 감정이 발전한다. 자유로운 삶이 시작된다. 자율의 문제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사춘기는 애착 문제가 되살아나는 시기다.

 

강렬한 애착 욕구는 일생 동안 우리를 따라다닌다. 애착 행동 징후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에게서도 발견된다. 성인의 경우 특히 부담이 심할 때 위안과 조언을 구하고 힘을 얻고자 멘토나 절친, 연인 같은 중요한 사람과의 애착을 찾는다고 대니얼 시겔은 확인했다. 

 

알면 바뀐다

에이전시 관계 패턴

스물세 살 주잔네는 이렇게 말한다. “제 상태를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남들의 생각을 더 잘 알거든요. 그리고 그걸로 내가 뭘 할지 결론을 내리지요.” 주잔네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자기 행동도 남을 기준으로 결정한다. 그녀의 인식은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한다. 남들이 행복하려면 내가 뭘 해야 하지?

 

에이전시는 타인과의 조율, 타인에 대한 공감에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놀랍도록 많은 여성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 마치 반사 행동과도 같다. 언어를 배우기 전에 이미 머리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식적인 사고라기보다 본능적인 신체감각에 더 가깝다. 우리 몸은 상대보다도 더 먼저 상대의 감정을 반사하고 인지한다.

 

관심의 초점이 친구나 배우자, 엄마나 자식들에게 맞춰진다. 남들의 욕구는 놀랄 정도로 잘 알아차려서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척척 해결해준다. 어릴 적에 이런 패턴을 익힌 여성은 거절도 잘 못 한다. 거절하려면 자신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너의 경계는 이미 오래전에 희미해졌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요가 학원에 있을 때 남편한테서 집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오면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마음은 벌써 집에 가서 상을 차리고 있어요. 오로지 남편이 뭘 먹고 싶어 할까 그 생각뿐이죠. 남편이 기다릴 텐데 하는 생각에 선생님 말씀도 귀에 안 들어오고요. 하지만 막상 가보면 남편은 전혀 절 기다리지 않아요. 혼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이런 ‘에이전시’ 관계 패턴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결국 에너지가 다해 더 이상은 돕고 싶지도 않고 도울 수도 없다. 수많은 여성이 이런 번아웃을 경험한다. 그래서 굳게 결심한다. 이제부터는 나만 생각해야지! 하지만 금세 난관에 부딪힌다. 남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하지 않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남들이 원하는 것은 잘 알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남 생각만 하는 사람은 자신을 잘 모른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언제 “예스”가 필요하고 언제 “노” 가 필요한가? 물론 경험상 거절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정직하게 거절하면 더 기분이 좋다. “너 왜 그래? 예전에는 잘 해 주더니?” 주변에서 놀라서 묻더라도 주눅 들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찾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한 걸음 한걸음 꾸준하게 나아가야 한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자꾸 하다 보면 차츰 긴장이 줄고 마음도 편해진다.

 

엄마를 챙기느라 자신에게는 소홀한 딸

엄마를 보살피는 딸 구원자부터 살펴보자. 이들의 엄마는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여성이다. 비극적인 운명 탓에 오랜 세월 힘들어했고, 딸은 일찍부터 그 사실을 감지한다. ‘우리 엄마는 나를 보살피지 못하는구나!’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안 챙기면 엄마가 죽을 거야.’

 

그러니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한다. 딸은 친구들보다 빨리 어른스러워지고 강해지며 사려 깊고 싹싹하며 놀라울 정도로 척척 일을 해낸다. 동생들을 챙기고 엄마의 병원 스케줄을 기억하며 집에 물건이 떨어지면 바로 구해놓고 엄마가 커피에 설탕을 몇 스푼 넣는지도 잊지 않는다. 딸은 무엇이든 다 해낸다. 법석 떨지 않고 조용히 당연한 듯 엄마 대신 결정하고 집안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할이 뒤바뀌었다. 엄마가 할 일을 딸이 떠맡은 것이다. 엄마가 딸이 되고 딸이 엄마가 되었다. 딸이 강자가 되고 엄마가 보살핌을 받는 약자로 전락한다. 이런 역할 역전을 전문용어로 ‘부모화’라고 한다.

 

당연히 구원자는 가족의 인정과 칭찬을 듬뿍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칭찬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워낙 퍼주며 살다 보니 받기를 쑥스러워한다. 이런 여성은 묘한 긴장 상태에 있다. 객관적으로는 힘이 넘치지만 동시에 실패할까 봐 늘 노심초사한다. “내가 실패하면 온 집안이 무너질 거야. 나 없으면 안 돼!” 그 결과 이 여성들은 한시도 엄마와 떨어지지 못한다. 당연히 자기 인생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심지어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 곁을 지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딸이 어른이고 엄마가 자식이다. 보통 가정에서 엄마가 자식의 모든 것을 대신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엄마가 지치지도 않고 자식을 걱정하고 보살핀다면, 엄마의 안테나, 애정과 불안이 10년, 20년, 30년 동안 지치지도 않고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식은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한다. 가족 시스템을 연구하는 프란체스카 메이슨 보링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딸들은 발언권이 세다. 엄마 위에 있고 엄마를 평가한다. 엄마가 뭘 잘 못 하는지, 뭘 원하는지 잘 안다.”

 

엄마에게 거부당한 딸의 자기 보호 전략

‘원치 않는 존재’라는 느낌은 깊은 고독을 남긴다. 아이는 ‘엄마에게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문제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자기가 끌어안는다. 애착 이론으로 보면 엄마가 안전한 항구가 아니다. 아이가 엄마 눈에서 거절을 보거나 엄마가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고 허둥거린다면 그 파장은 매우 크다.

 

아이는 일찍부터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한다. 또 아이는 안으로 숨어든다. 아빠나 할머니, 형제자매가 있어 그 구멍을 메워줄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엄마의 빈자리는 고통스럽다. 아이는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한다.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곳에선 위험한 감정을 멀리 치워버리고 느끼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생존을 보장하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빈 냄비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들은 일찍부터 정신을 바짝 차린다. 그리고 물이 절반 정도 남은 물잔을 보아도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정말로 극적인 일들을 겪었으나 잘 살아가는 여성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가 하면 부정적인 결과도 있다. 어른들에게서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한 아이는 관심을 얻어 내려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눈을 돌린다. 말썽을 부리고 문제아가 되고 자기 안에 틀어박힌다. 아이들은 시선을 끌기 위해 실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낸다. 이 여성들이 어른이 되면 부족한 애정의 구멍을 메우고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

 

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비결

지금까지 여러 행동 패턴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서도 말했듯 현실에서는 다양한 변형, 혼합, 뉘앙스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패턴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원자에서 경쟁자에 이르기까지 패턴들을 쭉 살펴보면 결국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다.

 

불평은 고통을 줄인다. 그 고통은 실존적인 고통이었고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고통이다. 어릴 적에는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른이다. 더 이상 무력한 어린아이가 아니다. 이런 행동 패턴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이미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 말은 동일시와 확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행동은 원초적 문제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략들은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이를 이해하면 마땅치 않은 측면도 더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거리를 두더라도 안정을 잃지 않게 하고, 멀찍이에서 우리 행동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고, 그 책임을 엄마나 남에게 떠밀지 않아도 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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